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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세배세] GAME START上

오늘도 길마는 접속하자마자 내게 다가왔다. …너무 부담스러운데, 말하면 상처받을까? 길마는 나를 보자마자 교환신청을 걸었다. 나는 바로 수락을 눌렀다. 몇주간의 일들로 인해서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거절을 눌렀다가는 길길이 날뛰며 난리를 치기 때문이다.

 

“머리띠 선물할게요.”

“…네? 괜찮은데.”

 

진짜 괜찮았다. 가운데 당근이 달린 회색 토끼 머리띠는 내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깜찍했다. 내가 곤란함에 머리띠를 손에만 들고 있자, 옆에 있던 길드원이 쓱 보더니 기겁했다.

 

“아니 무슨 이딴 건 어디서 가져왔어요?”

“닥쳐 납득 가는 얼굴이잖아. 어울리니까 선물하지.”

 

진짜 너무 낯뜨거웠다. 나…이래봬도 살만큼 산 다 큰 성인 남자인데. 길드원은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 예예. 축하드리고요. 오래가십쇼.”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면, 최강 길드 마스터의 깔이 된 이야기다.

 

“웃기지 마.”

“응?”

“너나해.”

 

그리고 나는 머리띠를 버리고 도망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강 길드’ 길마의 깔로 유명해진 거라서 내 본의는 아니다. 정말 나는 저놈이랑 엮이기 싫다고!

 

***

 

닉네임 햠스터. 본명 배세진. 나는 최근 뉴월드에 들어온 뉴비였다. 초보자 퀘스트를 마치고 보상인 빵을 갉작이며 마을 분수대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누군가 하고 올려다보니, 웬 남자가 서글서글한 눈을 휘며 웃고 있었다. 어느정도 외모 커스터마이징이 되기는 해도, 완전히 바꿀 수 없는 뉴월드에서 이정도 미남이라니. 현실에서도 꽤나 잘생겼겠지.

 

“안녕하세요. 온다고 했던 길마입니다.”

 

아. 같이 게임했던 형이 길드 오라고 했는데, 거절해도 기어이 쩔을 해주겠다고 하더니. 그 쩔을 해주는 사람이 형네 길마였나보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낯을 가리는 나는 소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네. 저는 햠스터입니다.”

“그래보여요. 밥 사줄게요. 가요.”

 

내가 딱딱하게 굳어서 대답하자, 체격 큰 길마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그리고 뉴월드 게임 이용자에겐 익숙한 가게에 도착했다. 무뚝뚝한 주인이 인사를 하며 턱하니 음료부터 내왔다. 달달한 벌꿀 맛이 나는 상큼한 차였다.

 

“맛있어요? 더 마실래요?”

 

순식간에 잔이 비어서 그런지 권유받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맛있네요.”

“맛있게 먹는 모습 보니까 좋네요. 원래는 내가 게임 설명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우리 길드 들어올래요?”

“아…….”

 

거절하자니 미안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길마가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생각만 해봐요. 오늘은 간단하게 메인 스토리 퀘스트 깨는 것만 도와줄게요.”

“네, 네…….”

 

그리고 길마분은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던전을 돌게 됐다. 이게 내 레벨에 들어갈 던전은 아니어서 빅버드 님이 앞장서서 때려잡고, 나는 옆에서 응원을 하면서 모든 경험치를 넘겨받았다. 보스맵에 입장하자마자 빅버드 님은 한방에 보스를 죽였다.

 

“멋있어요.”

 

나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내서 입을 가리니, 빅버드 님이 씩 웃었다.

 

“고마워요.”

 

나는 파티를 맺어서 쩔도 받으면서, 메인 퀘스트를 금방 클리어 했다. 금방이라고는 하지만 장장 6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스토리를 봐야 재밌을 거라면서 스킵하지 말라고 말한 탓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스토리가 재밌어서, 넘겼다면 이 재미를 놓쳤겠구나 싶었다. 접속을 종료하기 전, 길마분이 친구추가를 걸어와서 바로 수락했다. 새로운 게임 친구가 생기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잠이 들기 전, 나는 일기장을 펴서 간단하게 오늘 있었던 일과 게임 플레이를 적었다. 그리고 망설이다 마지막에 이 문장을 꾹꾹 눌러 썼다.

 

[길마인 빅버드 님이랑 친해지고 싶다.]

 

아마…소심한 내 성격상 어렵겠지만.

 

***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게임에 매달리게 됐다. 뉴월드는 그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었다. 100레벨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빅버드 님은 내게 갑자기 거래 신청을 걸었다.

 

“빅버드 님…?”

 

얼른 수락하라는 듯이 턱짓만 하시기에, 일단은 수락했다. 그리고 창에 올라온 물건들을 보고 나는 입을 떡벌렸다.

 

[2019썸머 바캉스 옷/2019썸머 바캉스 팔찌/2019썸머 바캉스 신발/2019썸머 바캉스 모자/2019썸머 바캉스 플라밍고 튜브]

 

모르긴 몰라도 예전에 나온 의상이라면 가격이 극과 극인 것은 안다. 아주 싸거나, 아니면 매물이 없어서 비싸거나. 이건 예쁘기 때문에 후자일 가능성이 커보였다. 혹시나해서 인터넷창을 띄워 아X템X니아에 시세를 검색해본 나는 놀라서 숨을 들이 쉬었다. 막 태어난 사슴처럼 다리가 벌벌 떨렸다.

 

[2019썸머 바캉스 풀셋 현금 200만원]

 

“이런 거 못 받아요…!”

“내 뉴비한테 이런 것도 못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형.”

“혀, 혀엉…?”

“말꼬리 늘리는 거 귀엽긴한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네?”

“귀엽네. 그리고 부담스러우면 길드 들어와요. 뽕 뽑아줄 테니까.”

 

나는 고민했다. 돈을 미끼로 날 길드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인 게 잘 보였다. 그런데 대체 왜? 내가 딱히 게임을 잘하는 고수인 것도 아닌데.

 

길드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주목해서 부담스러웠다.

 

“햠스터님 잘생기셨네.”

 

그러면서 어깨를 팍팍 치며 친근감을 표현하는데, 나는 민망함에 웃기만 했다. 그런데 어째 칭찬 받은 건 나인데, 빅버드 님이 인상을 팍 쓰셔서 나는 쭈그러들었다. 내 얼굴이 맘에 안 드시나? 그래서 싫은 티를 내시는 건가? 이런 내 착각은 금방 깨졌다.

 

“나만 칭찬할 거야. 그딴 말 하지마라.”

“와, 새끼. 침발라놨다 이거냐?”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더 큰 데한민국이 된 것인지, 약간 이상한 발언을 하는데도 다들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게 충격적이었다.

 

빅버드 님, 잘생기긴 했지만 이상한 분이신 것 같았다.

 

“저, 저 로그아웃 할게요!”

 

…결국 도망치고 말았다.

 

로그아웃 하자마자 통통한 햄스터 바디필로우에 얼굴을 박았다. 볼이 바디필로우에 짓뭉개졌다. 내 새하얀 볼은 늘 말랑말랑했다. 그게 유약한 인상을 만들어서 싫어했다. 살…잘 안 빠지기는 해도 빼고 싶었는데. 이세진은 찹쌀떡 주무르듯이 늘 내 볼을 주물렀는데….

 

어느새 이세진 생각뿐이다.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는다. 설마하니….

 

“아닐거야. 아니어야해.”

 

고개를 흔들 때마다 햄스터 바디필로우도 같이 흔들렸다.

 

이 사랑은 시작부터 틀려먹었다. 이세진도 남자, 나도 남자니까. 이뤄질 확률은 정말 희박했다.

 

***

 

“뭐야, 로그아웃? 도망갔네. 야, 햠스터를 꼭 영입해야겠어? 저렇게 싫어하는데?”

“어. 할 건데?”

“걔도 어지간하다. 왜 자꾸 싫다고 한대? 그럼 차라리 방식이라도 바꿔봐.”

“어떻게?”

 

놈은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꼬시는 거지.”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던 이세진은 어이가 없어서 오만상을 썼다.

 

“야, 내가 누구냐? 이래 봬도 여친만 열 명 사겼던.”

“그리고 금방 차였지.”

“아 들어봐. 도와주려고 해도 딴지를 거네.”

“일단 말은 해봐.”

“보통 연인 부탁은 잘 들어주잖아. 살살 달래서 영입하는 거지.” 

 

이세진은 배세진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왜 배세진의 마음을 이용하는 게 싫은지 알아차렸다. 하루종일 배세진의 생각만 잔뜩 하는 자신을 눈치채고 웃어버렸다. 좋아하는 구나, 그 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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