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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 작은 라이트만이 빛났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 속 간간이 철컥대는 쇳소리만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쇳소리 대신 긴 한숨이 공백을 메웠다. 동시에 라이트가 꺼졌다. 조금 전까지 라이트가 빛나던 곳에서 웬 남자가 고개를 들더니 그대로 뒤로 풀썩 드러누웠다.

 

  “……형.”

 

  중얼거림이 신호라도 되는 듯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남자는 소음의 정체를 확인해보려 하지도 않고 그대로 팔을 눈 위에 얹었다. 차가운 팔이 닿은 눈가가 유난히도 뜨거웠다. 남자는 한 번 더 깊게 한숨을 토해내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적막 속 숨소리 대신 심장 소리가 요동쳤다. 이러다 심장이 터져서 개죽음 당하면 어떡하지. 같잖은 생각이 피어나는 걸 보니 확실히 긴장하고 있다. 무엇에 대한 긴장일까. 나는, 무엇을―

 

  “이세진.”

 

  팔로 눈을 가린 채 드러누워 있던 이세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느리게, 아주 천천히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실루엣조차 분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동자 한 쌍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왜 깨어있어.”

 

  조곤조곤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고, 덤덤한 듯하지만 다정한 목소리. 덤덤함 속에 숨겨진 다정함을 이세진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세진만은…….

 

  “형.”

 

  이세진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형. 혀엉. 형……. 이세진은 몇 번이고 그를 불렀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허공에서 공명한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실루엣이 갸웃거린다. 이세진은 결국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거운 염원들이 금세 손을, 팔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성공이었다.

 

 

 

사랑공식

 

 

 

  결국 세계는 거대한 인구절벽을 맞이했다. 어느 순간 연간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앞지르고, 천천히 떨어지나 싶던 인구수는 어라? 하는 순간 급격하게 추락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차라리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좀비 바이러스 같은 게 퍼졌다든가,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퍼졌다든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을 이상 기후가 도래했다든가, 운석이라도 충돌했다든가, 기타 등등 아무튼 합당한 이유가 있었더라면. 그래도 ‘아, 이제 인류가 지구에 그만 살 때가 됐구나.’ 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었고, 손을 쓴다 해도 기껏해야 출산 장려 정책 몇 가지를 추진할 뿐이지 결국 인간이 인간을 강제로 교배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래프는 가파르게 떨어졌다.

  인류는 늘 답을 찾는다고 했던가. 앞은 바다요, 뒤는 용암인 상황에서 인류는 바다나 용암에 뛰어드는 대신 땅을 파는 길을 선택했다. 바닥으로 추락한 인구수를 다시 전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회복이 아닌 극복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허겁지겁 땅을 파내 도달한 지하의 끝은, 안드로이드였다.

  인류는 끝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냈다. 왜 굳이 안드로이드가 필요했을까? 인간이 하던 일들을 기계가 대체한 것들은 이미 많이 있었지만, 인간의 손으로, 발로, 아무튼 인간의 외형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라는 건 과학자들이 근엄하게 말한 표면상의 이유고. 아마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인류는 감히 멸종해서는 안 되며, 멸종할 수 없으니 거짓으로라도 만들어내겠다는 알량한 자존심. 아직 인류는 건재하다고 허세부리기 위해 만들어낸 인간과 완벽하게 똑같이 행동하는 안드로이드.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는 건 윤리에 어긋난다며 분명 많은 반대가 있었을 텐데도, 인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니다, 오히려 더 굳건해졌나.

 

  “이세진.”

 

  깨작깨작 밥을 먹던 배세진이 결국 소리 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이름을 불린 당사자는 크게 입안으로 밥을 밀어 넣는다.

 

  “야.”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기어코 불리고 나서야 이세진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배세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 하나도 안 아픈 것 같아. 출근하면 안 돼?”

  “안 돼요.”

  “아니, 내가 안 아프다니까……!”

  “형이 의사예요? 의사가 쉬라면 말 좀 들어요~ 하여튼 고집만 세가지고.”

 

  이세진은 웃으며 말했고 배세진은 한숨을 쉬며 다시 젓가락을 든다. 오늘 밤에는 통증 강도라도 올려야 하나. 아니, 그래도 진짜로 아파하는 건 싫은데. 그럼 그냥 본인이 아프다는 인식만 좀 더 굳혀줄까.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걸 형이 본다면 주먹으로 뺨이라도 갈길 게 분명한데. 원래부터 없던 입맛이 아주 바닥을 치고 땅을 뚫는다. 그냥 일어나버릴까 싶다가도 돌아올 반응이 두려워 그럴 수도 없었다. 배세진이라면 왜 더 안 먹냐, 어디 아프냐, 그런 것들을 물어올 텐데. 저 배세진은 짐작이 안 됐다. 내가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나가는데도 아무 신경도 안 쓸까 봐서, 그게 두려웠다.

 

 

 

  잘난 인권운동이 뭐라고. 아니, 인권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건가? 인간이 아닌데. 그래도 배세진은 늘 그것들의 권리를 인권이라 칭하며 주장했다. 인간을 위해 인간처럼 만들어뒀으면 인간 대우를 해주는 게 맞는 거란다. 이세진은 배세진이 그럴 때마다 딴청을 피우며 말을 돌렸다. 그걸 배세진은 다 알고 못마땅해 했다. 비겁하게 피하지 말라며 짜증을 부리면 이세진은 그런 적 없다고 웃으며 화제를 돌리곤 그냥 뒤에서 배세진을 끌어안았다.

  피하지 말걸. 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같이 할 자신이 없다면 하다못해 혼자 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기라도 했어야 했다. 물론 죽어라 원망받기야 하겠지. 그래도, 그랬으면, 배세진은 살아있었을 거다.

 

  -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어느 날 배세진이 말했다. 평소처럼 씩씩대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새빨개진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평온한 울림이었다. 그럼에도 담고 있는 뜻은 전혀 평온하지 않아 이세진은 보고 있던 현미경을 아주 밀어냈다.

 

  - 뭐가요?

  - 큰…… 더 큰 움직임이 필요해.

  - 그러니까 뭐가요. 형, 진정하고 말해보세요. 뭔지 몰라도 지금 흥분했어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변화 없는 일상의 누적이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는 똑같이 행동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구잡이로 만들고 마구잡이로 실험하고 마구잡이로 버릴 수가 있는지. 배세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변하질 않잖아. 백날 말로만 떠들어봐야 변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제는 대화를 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딱히 이세진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중얼중얼 말을 읊어대는 배세진의 어깨를 이세진이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단단히 붙들어놓고 똑바로 눈을 맞춘다. 그제야 배세진의 동그란 눈동자 안에 이세진이 가득 들어온다.

 

  - 그래서요. 뭘 어떻게 하시게요.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배세진도 그저 평범한 연구원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실험하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이세진과 똑같이.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안드로이드를 대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찝찝해 하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마다하지는 않는. 딱 평범한 연구원, 그 정도. 그게 이세진과 배세진이었다.

  계기는 소소했다. 언제나와 같이 실패작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폐기 처분을 시작하던 배세진이 들은 작은 목소리. 그게 시작이었다.

 

  살려주세요!

 

  이미 파쇄 버튼은 눌렸다. 긴급 중지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문제의 그것이 멀쩡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긴급 중지 버튼을 눌렀을 경우 합당한 사유서를 작성해야 한다. 배세진은 정확히 2초를 고민했다. 바보같이 오래 고민했다고 생각하며 힘차게 긴급 중지 버튼을 손바닥으로 내리찍었다. 만에 하나 사람이 휩쓸렸을 수도 있잖아. 붉은 조명과 함께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 배세진은 기계가 멈추자마자 허겁지겁 뛰어들어 무수한 고철 덩어리들 사이를 파헤쳤다. 제발 사람은 아니길. 제발 사람은 아니길. 제발 사람은 아니길. 고철 덩어리들 사이로 혹여나 살점이 튀어나올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배세진은 간절히 기도하며 그 넓은 방을 뒤지고 또 뒤졌다.

  다행히 살점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멀쩡한 안드로이드도 없어 배세진이 들었다던 목소리는 영원히 오리무중에 빠졌다. 배세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사유서를 쓰면서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몇 번이고 떠올렸다. 목소리는 명확했고, 절박했다. 살려달라 외쳤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사람은 아니다. 끽해봐야 실수로 전원이 켜진 채 방치된 폐기 직전의 안드로이드였을 것이다. 상황에 맞는 대사는 적당히 어디서 학습했겠지. 이게 현재로서는 가장 옳은 추측이었다.

  배세진의 말을 들은 이세진 역시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하지만 배세진은 그날부터 쭉 생각했다. 살려달라던 안드로이드의 말. 삶을 원하는 외침. 만약 그 절박했던 외침이 단순히 학습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면? 안드로이드의 의지가 담긴 말이었다면. 혹시나, 안드로이드가 저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한다면. 감정이라는 걸 느낀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당연히 행동해야지.

  - 하……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해요. 형, 나 진짜…… ……아니다. 말해 봐요.

  - ……싹 다 가지고 튈 거야.

  - 네?

  - 여기서 숨기고 있는 각종 기밀문서들, 온갖 자료들…… 아무튼 죄다 가지고 튈 거야.

 

  배세진의 고동색 눈동자에 담긴 이세진은,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곧 일그러졌고. 아무튼 좋은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배세진은 신경도 안 썼다. 형. 이세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낮은 목소리로 배세진을 불렀다. 그제야 배세진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나? 배세진을 붙잡은 이세진의 손에 더욱 힘이 실리고, 이세진이 똑바로 배세진을 내려다봤다. 분명 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배세진은 올곧게 마주했다.

 

  - 그게 말이 돼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데!

  -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진작 내 말을 들었으면 나도 이렇게는 안 했지. 하다못해 듣는 시늉이라도 했더라면.

  - 그럼 나는요?

  - …….

  - 형한테 나는 뭔데요. 나는…… 날……

 

  애써 가라앉힌 감정이 일순간 들끓었다. 배세진이 죄다 버리고 도망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랬다. 왜 나보다 저 고철덩어리들이 우선이어야 하는지. 억울했고, 이해할 수 없었고, 분했다.

 

  - 이세진.

  - 쟤네는 진짜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사람이라고! 쟤네는! 형한테 사랑 같은 거 못 느껴! 근데 나는…… 난, 나는…….

  - …….

  - 형을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 ……같이 가, 나랑.

 

  배세진이 손을 들어 이세진의 어깨를 맞잡았다.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했다. 흔들린 건 배세진이 아니라 나였다. 이세진은 그때야 깨달았다.

 

  - 나도… 너를 사랑해. 알잖아……. 그래서 네가 같이 해준다면 더 좋겠지만…… 너는 계속 내가 이러는 거 싫어했으니까. 그래서… 너한테 폐 끼치기 싫었어. 그러니까…… 강요는 안 할게. 네가 원한다면 나랑 같이 가.

  - …….

  - 돈, 명예, 이곳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들, 어쩌면 목숨까지 버려도 괜찮다면,

  - …….

  - 나랑 같이 가.

 

  단단하고 견고한 목소리가 흔들림 없이 공기를 휘젓는다. 이세진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배세진의 말 뒤로 10초간은 우두커니 쳐다만 봤고, 3분간은 바닥을 노려보다가, 다시 또 2분간은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3분 13초간 달싹이는 입술. 총 8분 23초가 지나도록 이세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8분 23초가 지나고 배세진은 웃었다.

 

  - 괜찮아.

 

  괜찮다는데 이렇게 비참할 수가 있다니. 이세진은 절망했다. 나의 약함을, 형의 강함을, 나의 비겁을, 형의 용기를, 나의 어림을, 형의 성숙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세진이 쓸데없는 일로 죽지 않기를 바랐다. 배세진이 하려는 일들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배세진의 정의를 내심 낮잡아봤고, 얕봤다. 그 모든 치기 어린 감정의 바탕은 결국 사랑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배세진은 정말로 해냈다. 마지막 인사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자료를 들고 사라졌다. 서운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나 이세진에게 조금이라도 불똥이 튈까 봐 나름대로 배려했을 게 뻔했다. 바보같이. 그것마저 결국 사랑이 바탕이었다는 걸 알아서 짜증이 났다.

  기어코 해냈으니 오래오래, 기왕이면 평생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몇 달 뒤 배세진이 도로 잡혀 들어왔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만약 내가 같이 나갔더라면 배세진이 얕은 속임수에 속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진즉 다 지나가 때를 한참 놓친 후회만 계속 머리를 빙빙 맴돌았다.

  배세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세진이 보는 앞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망치 소리가 그대로 귀를 찢고 머리를 때렸다. 누가 봐도 괘씸죄가 적용된 과한 처벌이었다. 안드로이드와의 삶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문명의 이기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반역자에 대한 본보기. 배세진은 덤덤히 선고를 듣고만 있었다. 이세진은 벌떡 일어났다. 배세진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앉으라는 판사의 말에도 이세진은 앉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침묵만이 이어졌다. 그제야 배세진이 살짝 돌아본다.

  마주한 배세진의 눈은 멀리서 보기에도 여전히 단단했다. 왜 대체 형은 이런 순간에까지……. 이번에도 흔들리는 건 배세진이 아니라 나였다. 영겁 같은 찰나의 순간 내내 이세진은 배세진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민했다. 지금마저 고민하는 자신이 싫었다. 32초간은 우두커니 쳐다만 봤고, 10초간은 주먹을 쥐고 바닥을 노려보다가, 다시 또 10초간은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7초간 달싹이는 입술. 이어지는 판사의 호령. 총 59초가 지나도록 이세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59초가 지나고 배세진은 고개를 돌렸다.

  재판은 끝났다.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재판장을 떠나는 배세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세진은 자기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어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생긴 순간에도 말 한 마디 못하는 머저리 새낀데.

  재판이 끝나고 나서야 이세진은 뒤늦게 면회를 신청했다. 매일같이 신청했고 매일같이 거절당했다.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사형집행일이 도래했다. 본보기로 집행하는 사형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천 년은 더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참담했다. 그게 하필 배세진일 필요는 없었는데.

  이세진은 고민하지 않고 사형장으로 갔다. 여기저기서 배세진에 대해 멋대로 떠들어들 대는 소리를 들으며, 확 다 죽여 버릴까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다. 집행인이 배세진을 데리고 형장으로 올라서자 수군대던 소리들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배세진은 눈을 감고서 교수대 위로 올라섰다. 천 년도 더 전의 사형기구를 사용하는 이유가 뻔하디 뻔해 이세진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살려 달라 빌어보라는 소리로만 들렸다. 배세진은 입조차 열지 않았다. 이세진은 비겁한 생각을 했다. 배세진이 살려달라고 외쳤으면 했다. 비겁이고 비열이고 나발이고, 그렇게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뒤늦게 바랐다. 살려달라고 말해. 죽기 싫다고 말하라고. 그마저도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한 말이다. 배세진의 목에 밧줄이 걸릴 때까지도 목소리는커녕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판자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왔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을 무렵 눈이 마주쳤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세진은 똑똑히 보았다. 배세진은 떨고 있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떨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편에 선 이후로는 언제나 단단하고 견고하기만 했던 사람이…… 떨고 있었다.

  깨달은 순간 비명 같은 마찰음과 함께 바닥이 추락했다. 이세진은 입을 틀어막고 뛰었다. 인파를 헤치고 무작정 뛰었다. 닥치는 대로 뛰다가, 눈앞에 보이는 공중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속에 든 것들을 죄다 게워냈다. 든 것들이라고는 해도 말간 위액뿐이었다. 한바탕 토악질을 해대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꾸만 배세진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목에 밧줄을 두르고는 떨고 있던 배세진이……. 다시금 욕지기가 치솟는다.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자 바닥으로 방울방울 투명한 액체가 떨어졌다. 억눌린 흐느낌이 화장실을 울렸다. 흐느낌은 곧 오열로 변해 숨통을 틀어막는다.

 

 

 

 

  가만히 배세진의 볼을 쓰다듬는다. 변함없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볼이다. 이걸 구현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이세진은 쓰게 웃으며 반쯤 눈을 뜬 배세진의 입술에 그대로 입을 맞췄다. 제대로 눈을 뜬 배세진이 상황파악을 하기까지 2초,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이세진의 목에 제 팔을 두르고 응해온다.

  배세진을 탄생시키고 약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수도 없이 보정 작업을 한 끝에 ‘아주 큰 병은 아니지만 출근 할 수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며, 수술을 할지도 모르고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이세진이 재택근무를 하며 간호하는 상태’를 제대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출근하고 싶어.”

 

  입술을 떼어내자마자 한 소리가 저거다. 이세진은 배세진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 뒤에 팔을 받쳐 그를 일으켰다. 한 달간 해온 무수한 보정 작업들은 기껏해야 공복 주기, 수면 주기, 배세진의 현실 인식 상태 같은 것들이었지 성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있을 때도 그렇게 무참하게 버려졌는데 없으니 얼마나 더 할까 생각하면 짜증나.”

  “……에이, 형은 무슨 본인 아프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못 챙겨서 아파가지고. 그래서 짜증이 난다는 거야.”

 

  이런 게 진짜 배세진이니까. 배세진이 살아있을 때는 애써 무시해왔던 것들을 이제는 제 손으로 만들어냈다. 이게 무슨 모순이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외양이며, 피부 감촉이며, 각종 생활 습관들을 똑같이 만들어 놓는다 해도 배세진의 머릿속을 가장 크게 차지했을 것을 빼고 만들어버린다면 그게 어떻게 배세진이 될까.

 

  “나가서 아침부터 먹어요. 그래야 얼른 낫지.”

  “너는 요리도 못하면서 무슨 매번 아침을…….”

 

  아니, 그래서 먹기 싫어요? 그, 그건 아니고…! 지금까지 맛없었구나. ……그건, 아니고. 맛없었네. 아, 아니라니까!

  부엌까지 가는 동안 시답잖은 대화가 오갔다. 본래 안드로이드는 잠을 잘 필요도, 밥을 먹을 필요도 없었지만 이세진은 그렇게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잠을 자게끔 설계하는 건 간단했지만 밥을 먹어도 괜찮게끔 설계하는 게 어려워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제가 차려낸 밥을 하나하나 열심히 씹어 삼키는 배세진을 다시 볼 수 있으니 당연했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 괜찮을까.”

  “또 뭐가요?”

  “우리 팀에서 한창 맡고 있던 애 있잖아. 그땐 이름도 없었는데 지금은 생겼을지… 그새 몇 번 갈아치운 건 아니겠지?”

 

  이세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배세진의 기억은 본인이 연구소를 뛰쳐나가기 전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니까…… 아, 그때 그 얘기군. 배세진의 팀에서 더욱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겠다고 연구하고 있었던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결국 이름은 받지 못했고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 연구소 내에서도 특급 기밀 처리가 되어 배세진의 팀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폐기되기 전 넌지시 배세진이 던졌던 말이 있기는 했다. 하도 이상한 말이라 똑똑히 기억하는 탓에 조금 전 배세진이 꺼낸 안드로이드 이야기를 쉽게 떠올려낼 수 있었다.

 

  - 이세진.

  - 네?

 

  그렇게 운을 뗀 배세진은 한참 동안 말하지 않았다. 일단 불러놓고 한 번 더 말을 정리하는 건 배세진의 습관 같은 거라 이세진은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다만 평소보다 침묵이 더 길었다.

 

  -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 있다면 믿겠어?

 

  허무맹랑한 이야기. 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다 한다 싶어 이세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 인권, 인권 하시더니 이제 거기까지 나간 거예요?

  - 너……

  - 요즘 너무 몰두하셨어요. 그러다 진짜 건강 다 상해요. 안드로이드 챙기는 것도 좋은데 형 건강도 챙기면서 해요. 네?

 

  배세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한소리 하고 싶은 걸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와, 저러다 시작하겠네. 배세진이 다시 입을 열기 전에 이세진은 그를 끌어안고 턱선이며 귓가며 줄줄 입을 맞췄다. 그만 하라며 배세진이 밀어내는 순간까지 웃으며 억지로 한 번 더 붙잡아 안고.

 

  “걔는 좀 남달라서 매일 같이 붙어서 신경 쓸 게 많은데……. 나 없이도 다들 잘 하고 있을지 걱정 돼. 막 다뤄놨으면 어떡해?”

 

  밥을 먹는 건지 마는 건지. 진짜 배세진과 다를 바가 없어 이세진은 말없이 잠시 그를 구경만 했다. 자꾸만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맴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면서도 물어보고 싶은 건……. 확인하고 싶은 걸까. 무슨 확인을? 배세진은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너는 왜 안 먹어.”

  “형.”

 

  반사적으로 뱉어낸 부름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다른 말로 얼버무리기는 싫다. 바로 뒷말을 붙이는 대신 적막이 흘렀다. 배세진의 습관이 옮았나보다. 이제 와서.

 

  “안드로이드한테 감정이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기억은 있겠지. 이세진이 기억하는 일이니까. 다만 그 속내만은 이세진이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설정한 적도 없고 학습한 적도 없을 질문을, 이 배세진은 어떻게 대답해줄까. 답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그 답으로 확인을 받고 싶었다. 확신을 하고 싶었다.

 

  “뭐?”

  “왜, 형이 전에 그랬잖아요.”

  “…그랬지.”

  “그거 무슨 의미로 한 말이었어요?”

 

  또 한 번 적막이 흐른다. 꽤 오래 흘렀다. 배세진은 대답하지 않고 눈동자만 굴렸다. 질문에 알맞은 답을 찾지 못할 때 하는 행동. 이세진이 설정해둔 것이었다.

 

  “됐어요. 대답 못하면 말아요.”

 

  그리고 이세진은 웃었다.

  하하, 하, 하하…… …….

  바람이 빠지는 듯 힘없이 웃다가도, 푸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세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며 이세진을 쳐다보았고.

  역시 배세진이 아니구나. 몇 년을 기다려온 답을 이제야 받았다. 이제야 확인하고 이제야 확신했다. 이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배세진의 앞에 섰다.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러는데, 너…….”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배세진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몇 번 맞추고, 그대로 올라가 두 볼을 감싸 쥐어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숙여준 배세진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입술과 같은 감촉이 맴돈다. 비집고 들어간 입안마저 똑같은데도……

  배세진이 아니었다.

  허상이다, 이건. 허상……. 존재하지 않는…… …… …… …….

  급하게 얼굴을 떼어내고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허상은 여전히 눈동자만 굴렸다.

 

 

 

 

  죽은 사람과 단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아마 배세진은 그대로 주먹질을 했을 것이다. 배세진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그대로 이세진이 하고 있었으니. 그걸 다 알면서도 기어코 기를 써서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나중에 만나서 헤어지자는 소리 듣기 전에 전부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정보를 주입하는 건 간단하다. 한 달 동안 내내 해온 짓이기도 하고. 당장 수술이 잡힌 것으로 기억을 건드리고, 연구소 가장 지하에 자리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실험실을 수술 전 대기실로 생각하게끔 만들어놓았다. 안드로이드를 다루는 건 정말 간편했다. 그러니 다루기 어려운 배세진을 대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전원을 꺼놓은 채로 모든 기억을 삭제하면 됐다. 그런데도 굳이 귀찮게 새로운 정보를 주입하고, 있던 기억을 조작해가며 발판을 쌓아 올려둔 건 가히 이세진의 마지막 욕심이라 할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대우받길 원했던 배세진의 뜻을 마지막이나마 따르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를 뒤늦게라도 존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은―

  같이 가자는 배세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재판장에서 벌떡 일어나 놓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떨고 있는 배세진과 눈이 마주쳤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였다.

 

  “형.”

 

  이세진의 부름이 가동 버튼이 되어 실험대 위에 놓인 허상이 번쩍 눈을 떴다.

 

  “나를 사랑해요?”

 

  부질없는 물음. 제 손으로 직접 넣어둔 답이 돌아올 걸 알면서도.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봐.”

  “그냥. 별거 아닌 수술인데도 괜히 기분이 그렇잖아요.”

 

  조금 망설이는 것 같던 허상은 이세진의 목에 제 팔을 둘렀다. 이세진은 입술을 짓씹었다. 살짝 몸을 숙여주자 따뜻하고 익숙한 입술이 닿아왔다.

 

  “……사랑해.”

  “…….”

  “왜 바, 반응이 없어……!”

  “……아니, 너무 좋아서~ 나도 사랑해요. 알죠?”

 

  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세진은 허상의 눈동자를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허상이다. 언제나 이세진을 가득 담고 단단했던 배세진의 눈동자와는 달랐다. 맑지만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울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돌려보겠다고 몇 년을 몰두해 만들어낸 결과물이 결국……

  사랑한다 말하는 허상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담지 않고서 공식에 의거한 사랑만을 내뱉는 게 무슨 사랑일까. 그러니까 형,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 있다면 믿겠냐고 물었던 말에 대한 대답은,

  절대 안 믿어. 그게 내 답이야.

 

  “무서워요?”

 

  답모를 질문에 눈동자를 굴린다. 이세진은 허상에게로 다가가 눈을 감겨주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한숨 푹 자요.”

  “응.”

  “나중에 만나요.”

  “응.”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그 말이 뭐라도 되는 양 급하게 목 뒤를 더듬어 작은 스위치를 누르면 더는 반응이 없다. 이세진은 비틀대며 기계로 걸어가서는 거칠게 선을 뽑아냈다. 잘 덮어둔 허리 쪽의 커버를 떨리는 손으로 열어내고 드러난 단자에 뽑아낸 선을 꽂았다. 전원을 켜기 위해 다시 기계로 걸어가는 동안 몇 번을 넘어질 뻔했는지 모르겠다. 다 흐린 시야 때문이라고 애먼 탓을 했다. 이세진은 손을 들어 얼굴을 몇 번이고 훔친 후에 기계를 붙잡았다. 전원 버튼에 가까이 가져간 손가락 끝이 도저히 가눠지지 않을 정도로 벌벌 떨렸다.

  이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전부 0으로 돌아간다. 아무런 기억도, 정보도, 존재하지 않는 0의 상태. 그렇게 껍데기만 남게 되면 장례를 치러주려 한다. 먼 과거의 방식대로 무덤을 만들어줄 것이다. 싱그러운 흙을 깊게 파내고, 그 아래 전원이 꺼진 몸을 조심스레 넣어두고, 흙을 덮고 나면 그 위로 배세진이 좋아하는 꽃을 올리고. 감히 권위에 도전한 대역죄인이 되어 제대로 된 무덤조차 남지 않은 배세진을 대신해서 만들 허상의 무덤. 배세진 이름 석 자는 못 새길지라도, 이세진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됐다. 마지막까지 배세진을 대신하는 용으로 쓸 생각이라니, 나중에 배세진을 만나면 정말 거하게 얻어맞겠구나.

  이세진은 거대한 기계를 붙잡고 머리를 처박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더 처박고 나서야 주체되지 않는 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쓰러지듯 기계에 기대어 주저앉자 기계가 돌아가는 진동이 고스란히 온몸에 느껴진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이세진은 결국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거운 염원이었던 것들이 금세 손을, 팔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소음 사이로 소리 없는 오열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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