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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진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배세진은 현재 대학생입니다.

 

배세진은 제 여동생이 울며불며 떼쓰는 것을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남자친구랑 싸워서 새 사람 만난다더니 하루도 못 가고 소개팅 잡은 것을 후회했다. 배세진은 제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시계를 흘깃 보자 동생이 울며불며 곡소리를 내는 것도 벌써 30분이 지나있었다.

 

“그만 울어. 너 그러다 쓰러진다.”

“오빠는 동생이 우는데 해줄 말이 그런 거밖에 없어?”

“내가 뭐라고 해서 바뀌는 게 있어?”

 

틱틱대며 한 마디씩 얹어가다 보니 어느새 여동생은 울음을 그쳤다. 좀 진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어깨는 아직도 들썩거렸다. 배세진은 들고 있던 물컵을 건넸다. 여동생은 건네받은 물을 벌컥벌컥 넘겼다. 그는 잠시 휴대폰을 보더니, 배세진에게 제 스케줄표를 보여줬다.

 

“오빠, 오늘 약속 없어?”

“약속 없긴 한데… 왜?”

 

배세진은 싸함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제 동생에게 거짓 없이 대답했다. 여동생은 휴대폰으로 몇 번 타자를 치는가 싶더니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오빠 미친 거 아는데. 나 대신 소개팅 나갈래?”

“뭐? 너 진짜 미쳤어?”

“오빠, 사랑스러운 동생 보고 한 번만 제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지!”

 

배세진은 시뻘게진 얼굴로 큰소리쳤다. 여동생이 저를 보더니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배세진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여동생은 배세진의 눈치를 살피며 우는 소리를 더 키웠다. 배세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배세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여동생에게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알았어. 시간 다시 알려줘.”

“근데 오빠… 어떻게 하고 나갈 거야?”

“그거야 당연히 평소대로 하고… 뭐야, 원하는 게 따로 있어?”

 

배세진은 또다시 싸함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다. 동생은 음흉한 얼굴을 하며 배세진의 손목을 덥석 잡아챘다. 평소 제가 알 리 없는 억센 힘으로 여동생 방으로 끌려갔다. 동생은 저 자신 꾸미는 걸 아낌없이 하는 타입이었다. 방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했다. 배세진은 방을 둘러보며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늠해봤다.

 

“오빠 받아!”

“네 옷이잖아?”

“응! 입어.”

 

배세진은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받으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파리해진 얼굴로 옷과 여동생 얼굴을 번갈아 봤다. 여동생은 옷장에서 몇 벌 더 옷을 꺼내더니 배세진에게 여러 개를 들이밀었다.

 

“오빠한테는 어떤 색이 어울리려나?”

“무슨 짓이야…. 오빠가 왜 네 옷을 입고 나가?”

“상대방은 내가 나오는 거로 알 거 아니야.”

“내가 잘 말하고 나오면 되지!”

 

여동생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제 옷을 들이밀었다. 배세진은 차마 쳐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배세진은 울상을 지었지만, 동생은 물러나는 기색 없이 몇 가지 옷을 대보았다.

 

“오빠는 역시 흰색이 어울리네.”

“난 이런 옷 안 입고 싶어….”

“이거 입고 나가!”

 

배세진은 제가 받은 원피스를 허무하게 쳐다봤다. 누가 봐도 청순한 타입이 입을 법한 옷이었다. 차마 제가 입은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배세진은 기겁하며 동생에게 옷을 떠넘겼다. 동생은 기겁하는 걸 보더니 다시 우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딱 이번 한 번만 해주면 돼.”

“그냥 정상적으로 다녀오면 안 될까?”

“주선자가 나랑 친해서 그래…. 이번 한 번만 제발”

 

동생은 우는 소리를 내며 다시 옷을 쥐여줬다. 배세진은 원피스를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배세진은 터덜거리며 제 방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동생이 잘 어울릴 거라며 배세진을 위로했다. 배세진은 문을 잠그고 방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제발, 아는 사람 마주치면 안 될 텐데.”

“오빠 다 입었어?”

“오빠 다 입었어. 나갈게.”

 

배세진은 어색한 몸짓으로 손을 꼼지락댔다. 동생은 제 턱을 매만지며 배세진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다. 배세진은 움찔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완벽해. 절대 남자라고 생각 못 해.”

“칭찬 아닌 거 같은데….”

 

배세진은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거울에 보이는 제 모습을 봤다. 어색한 옷차림에 서 있는 것도 어정쩡해졌다. 동생은 어느새 제 방에서 검은색 무언가를 꺼내 제게 보여줬다. 머리칼이 뭉쳐있는 게… 설마 가발인 건가? 동생은 경악하는 배세진의 얼굴을 보고 씩 웃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오빠 못하겠다. 이건 진짜 아니야.”

 

여동생은 웃으며 배세진에게 가발을 씌웠다. 손아귀가 거센 탓에 피할 수도 없었다. 동생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시간이 없다면서 배세진을 제 방으로 끌고 갔다. 동생은 배세진을 화장대에 앉히더니 빠른 속도로 얼굴에 화장품을 두드렸다. 배세진은 화장품 냄새에 코가 간질거렸다.

 

“와 진짜 너무 완벽하다. 오빠 완전히 몰라보겠어.”

“제발 그래야 할 텐데. 누가 나 알아보면 수치사할지도 몰라.”

“이제 출발해야겠다. 오빠 잘 다녀와~”

 

배세진은 하늘거리는 원피스 아래로 보이는 운동화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세진은 전달받은 주소를 검색했다. 대학로에 있는 유명한 파스타 집이었다. 차나 버스를 타고 가기도 애매한 거리라 그냥 걸어갔다. 배세진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아직은 해가 지면 쌀쌀한 날씨였다. 간간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가게를 찾았다.

 

“내가 먼저 도착한 거려나?”

 

배세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녀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꽉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자 약속 시각까지 아직 10분이나 남아있었다. 배세진은 대충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여동생에게 재차 장소 확인을 받은 후 상대방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배세진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손톱 끝을 깨물었다. 아까 받아뒀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짧게 울리고 상대방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늘 소개팅 나오는 사람인데요. 혹시 어디쯤이신가요?”

“저 지금 식당 안쪽인데. 제가 손 들고 있을게요.”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배세진과 반대편 쪽에 있는 남자가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배세진은 남자와 가까워질수록 경악을 참지 못했다.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분명 배세진이 아는 얼굴이었다. 경영학과에서 수석으로 유명한 이세진이었다. 분명 여자에 별로 관심 없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네… 저도 안녕하세요….”

 

배세진은 잔뜩 경계하며 이세진이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이세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배세진을 쳐다봤다. 배세진은 테이블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세진은 살짝 배세진을 쳐다보더니 멀찍이 있던 직원을 불러냈다.

 

“뭐 좋아하세요?”

“가리는 거 없어서 다 괜찮아요.”

 

배세진은 제 목소리 톤을 높이며 정체가 들키지 않기를 빌었다. 이세진은 메뉴판을 배세진 쪽으로 돌리며 인기 음식들을 설명했다. 여기에 자주 와봤거나, 열심히 공부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배세진은 불쑥 올라오는 죄책감이 올라왔다. 본인이 나온 것도 아닌데 최대한 잘해주고 끝내자고 생각했다.

 

“세리씨 오늘 저랑 있는 거 재미없어요?”

“네?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배세진은 고개를 거세게 내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배세진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이세진을 쳐다봤다. 이세진은 입가를 가리고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배세진은 속으로 안도를 하고 앞에 둔 음식을 해치웠다.

 

시켰던 음식을 다 먹어가자 분위기도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배세진은 입은 원피스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원피스 입은 게 어색했다. 슬쩍 이세진의 눈치를 보자 제가 남자라는 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이세진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배세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배세진이 당황한 눈치로 되묻자 이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씩 웃는 게 꽤 여럿 울릴 얼굴이었다. 이세진은 진정하라는 듯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배세진은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었다.

 

“아까부터 제 눈치를 많이 보시네요. 정말 억지로 나온 거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세진씨가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제가 그러면 안 되죠.”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세리씨 의견이 더 중요한 거죠.”

 

배세진은 일부러 가방을 정리하며 딴짓을 했다. 이렇게 착한 사람한테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할까? 배세진은 사정사정하던 제 동생을 떠올렸다. 아무리 부탁으로 온 거라지만, 상대방이 친절하게 대해줄수록 양심은 더더욱 찔렸다.

 

배세진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식사를 끝내고 계산하려고 가다 이세진과 작게 실랑이를 했다. 서로 본인이 내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이었다. 배세진은 완력에 지고 말았다. 뒤늦게 카드를 건넸지만, 결제가 끝난 이후였다. 배세진이 힐긋 노려봤지만, 이세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처럼 웃기만 했다.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으신 줄 몰랐네요.”

“저를 얼마나 봤다고”

“그것도 그렇네요.”

 

배세진은 제 실수를 퍼뜩 깨닫고 사과하려 했지만, 이세진은 되려 긍정을 했다. 배세진이 울상을 지었다. 오늘따라 저답지 않은 실수를 연발했다. 동생 소개팅 상대인데 나쁜 말이라도 나오면 어떡할 건지. 배세진은 첫 소개팅을 망치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다.

 

문득 배세진은 이걸 제가 다 뒤집어쓰는 건 어떨지 생각해봤다. 동생보다 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여장하는 남자라고 소문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은 안 됐지만, 학교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제가 여자인 줄 알고 잘해주는 거라면 너무 미안했다. 배세진은 이세진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세진씨 잠깐 제 얘기 좀 들어줄 수 있어요?”

“네, 무슨 일인데요? 세리씨 집 어느 방향이에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중요한 일이에요.”

 

배세진은 얼굴을 굳히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배세진은 이세진의 팔목을 붙잡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해도 괜찮을까? 배세진은 이세진이 저를 경멸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게 무서웠다. 착한 사람이었는데…. 이세진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며 저를 다독였다.

 

“세진씨…. 저 세진씨한테 거짓말한 거 있어요.”

“그게 뭔데요?”

“저 사실 남자예요!”

 

배세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반응을 해도 당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때리려나? 아니면 소리 지르려나? 비명이 들리리라 생각했지만, 이세진의 반응은 조용하기만 했다. 배세진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이세진의 얼굴이 어떨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세진은 멍한 표정으로 배세진을 쳐다봤다. 너무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한 걸까? 배세진은 머뭇거리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세진은 앞머리를 쓸며 배세진과 눈을 마주쳤다. 배세진은 예상치 못하게 눈이 마주쳐 어깨를 움찔거렸다.

 

“세리씨 지금 진심이에요?”

“미안해요. 속이게 돼서…. 세진씨를 놀리려고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정말 죄송해요….”

“그러니까 세리씨가 남자다… 그 말인 거죠??”

 

배세진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이세진은 짧게 고민하는 듯싶더니 배세진 어깨를 붙잡았다. 배세진은 침을 삼키며 이세진의 뒷말을 기다렸다.

 

“알고 있었어요. 남자인 거.”

“뭐?”

“끝까지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밝히실 줄은 몰랐네요.”

 

배세진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이세진의 얼굴을 살펴보니 거짓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세진은 목덜미를 매만지며 배세진 눈치를 살폈다. 배세진은 아까부터 얼빠진 얼굴로 이세진을 쳐다봤다. 머릿속에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세진 선배 저 기억 못 하세요? 학교에서 몇 번 오다가다 마주친 적 있었는데.”

“그쪽을 모를 리가…. 우리 단과에서 제일 유명한데.”

“제가 세리씨한테 따로 부탁드렸어요. 동생분은 아무 잘못 없으세요.”

“그러니까…. 뭐라고?”

 

배세진은 주변에 카메라가 있는 건 아닌지 둘러봤다. 이세진은 구구절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했다. 요약하면 이세진이 배세진을 만나기 위해 동생을 꼬드겨 소개팅에 나오게 했다는 소리였다. 배세진은 가발과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듣고 싶어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건 내가 판단해요.”

 

배세진이 단호하게 얘기하자 이세진이 작게 흠칫했다. 배세진은 큰 결심을 하고 여장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수치스러웠다. 이게 두 사람의 공작이었다니. 배세진은 눈을 부라리며 이세진을 노려봤다. 이세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형, 아니 그쪽 좋아해서요.”

 

오늘 저녁 메뉴 정하듯이 아무렇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배세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뻔했다. 한 박자 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이세진은 배세진 눈치를 살피며 손목을 잡았다. 이세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배세진을 쳐다봤다.

 

“저랑 사귈래요?”

 

상상도 못 했던 답변에 배세진은 말을 잃었다. 타오르던 전투력이 0으로 내려갔다. 배세진은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이세진을 쳐다봤다. 이세진은 결심에 찬 듯 배세진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배세진이 고개를 들어 이세진을 보자 그는 시선을 맞추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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