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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연속은 운명인가!

 

 

 

 

첫 번째 우연은 세진과 세진의 첫 만남부터였다. 전혀 접점이 없던 둘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세진의 동창이자―배세진은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세진의 동아리 선배가 워낙 인싸였던 탓에, 무려 배세진까지도 본인이 연 술자리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배세진이라면 절대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았을 테지만, 왜인지 그날의 배세진은 시간에 맞춰 전달받은 장소로 향했다. 정이네 포차, 메뉴들 중 특히 어묵이 맛있기로 근방에 소문난 곳이었다. 그리고 배세진은 어묵꼬치를 좋아했다. 그것 때문이라고 버스에서 내리며 배세진은 속으로 곱씹었다. 가서 오뎅만 시켜 먹어야지.

 

 

이세진은 고등학생 때부터 반장과 학생회장을 도맡아 하는 학생이었다. 눈치 빠르고 사람을 잘 다룰 줄 아는, 배세진이 선호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세진을 좋아했다. 동아리 선배도 마찬가지로 싹싹하고 일 잘하는 후배인 세진을 아꼈다. 이세진이 그 술자리에 오게 된 건 당연지사였다.

 

 

하여튼 그런 이유들 때문에 그날 세진과 세진이 처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필 이세진이 배세진의 옆자리였고, 하필 사는 곳이 가까워 집까지 같이 가게 된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이었다.

 

 

배세진의 집까지 가는 길에 세상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이세진이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5분 정도 얘기를 했을까, 그 사이에 둘은 서로가 안 맞는다는 것을 단번에 직감했다. 애초에 정반대인 성향의 둘이었다. 그러나 이 형이랑 다시 만나서 친해질 일은 없겠구나. 하는 이세진의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런 걸 보통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던가. 세진과 세진은 그 뒤로 자꾸만 마주쳤다. 학교 어딘가의 자판기 앞에서, 새벽에 이세진이 담배를 피우던 골목길에서, 배세진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 개봉 첫날 영화관 옆자리에서―배세진이 팝콘도 콜라도 없이 무려 청포도 에이드를 들고 왔다는 것에 이세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배세진이 맥주가 든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나오던 편의점에. 이것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우연들. 그쯤 되니 이세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자주 보네요?라고 말하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 형님 저희 자주 보네요~ ”

 

 

“ 어, 응 그러게…. ”

 

 

“ 맥주 혼자 드 시게요? 그럼 좀 재미없지 않나, 누구 불러서 같이 드세요. 정 없으면 저라도 같이 있어 드릴까요? ”

 

 

“... 너 그럴 생각 없잖아. ”

 

 

“ …네? ”

 

 

 눈이 빠르게 흔들리면서 순간 표정이 굳었다. 이 형은 왜 이러지? 나랑 진짜 안 맞나 봐. 실 웃으며 하는 말에 고깝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서부터는 괜한 오기였다.

 

 

 “ 아닌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 전 형이 같이 마시자고 하시면 그럴 생각이었는데. 조금 속상하네요, 형님은 제가 싫으신가.. ”

 

 

어떻게든 진심인 것처럼 보이려고 눈썹을 슬 내려뜨리자 정말인가? 하는 게 얼굴에 다 보였다. 이런 쪽에 약한 건가? 방금 전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볼 땐 언제고, 금방 표정이 바뀌는 배세진에 웃음이 새어 나오는 이세진이었다.

 

 

서로 대화를 이끌어갈 자신이 없기에 넷플릭스로 아무 영화나 틀어 놓았고, 집안엔 영화 소리와 홀짝이는 소리가 전부였다. 둘 다 어느 정도 취해갈 때 즈음, 이 영화가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불필요하고 진득한 스킨십 장면이 이어졌다. 이래서 혹평을 받았었구나. 배세진은 캔에 남은 한 모금을 털어 마시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가 문제였다고 배세진은 생각했다. 그 이상하고 묘한 기분 때문에 눈이 마주쳤고, 마침 둘 다 손에서 캔을 내려놓은 상태였으며, 둘의 귀에는 영화에서 나오는 숨소리와 입과 살이 닿으며 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이세진과 배세진 사이에 일어났던 연속된 우연들의 결과는, 그날 밤의 충동적이고 불필요한 입맞춤이었다.

 

 

다음 날 어제 일은 없던 걸로 하자며, 너도 그게 편하지 않냐는 제안에 이세진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그 동의가 무색하게 된 것은 일주일 후 다시 배세진의 자취방이었다.

 

 

“ …네가 여길 왜 왔어? ”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쏙 나온 작은 머리통. 그 앞의 이세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알코올 향을 풍기고 있었다. 덕분에 배세진의 미간이 자동으로 좁아졌다. 이세진은 눈만 느릿하게 끔뻑이다 돌연 손을 들더니 엄지로 주름진 미간을 꾸욱 눌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렇게 얼굴 찌푸리면 못생겨져요, 라는 것이다. 술기운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 닿은 손은 뜨듯한 온도였다. 아는 사람을 문전박대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던 배세진은 갑자기 찾아온 진상손님―그런데 이제 취하고 입을 맞춘 전적이 있는―을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였다. 친히 소파 앞까지 손목을 끌고 데려가 줬더니 앉지도 않고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는 이세진을 배세진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와서는,

 

 

“ ...키스하고 싶어요. ”

 

 

깜빡이는 눈을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통보였는지, 이세진은 눈을 크게 뜬  배세진의 뒷목을 손으로 감싸 당겼다. 그대로 맞대오는 입술을 배세진은 밀어내지 않았다. 이세진의 입안에서는 과일소주 맛이 남아있어서 배세진은 취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날의 키스는 우연이 아니었고, 어쩌면 충동적인 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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