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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22.08.07까지 공개됩니다

◇ 배우 이세진은 이상형은 어떤가? 드라마 <동행>의 여자주인공 같은 타입인가?

- 어떤 타입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렵지만, 다정한 사람이 좋다. 자신도 모르게 다정한 면모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0.

이세진이 배세진의 인터뷰를 보게 된 건 아주 우연이었다. 평소처럼 SNS와 커뮤니티 등지를 모니터링하며 돌아다니다 동명 멤버의 인터뷰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 관한 인터뷰였기에 테스타 배세진보다는 배우 배세진에게 초점을 맞춘 인터뷰였다. 요새도 이런 고리타분한 질문을 인터뷰에서 하네. 그리고 그에 맞는 참 성격 같은 답변이었다. 농담 하나 없이 신중하게 대답한 게 글에서 느껴졌다.

다정한 사람이라.

참, 배세진 형님다운 취향이었다. 자기는 고슴도치 마냥 예민하면서 상대는 다정하길 바라다니. 이세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였다. 원인 모를 괘씸한 마음에 배세진을 괜히 신경 쓰이게 된 게.

 

 

1.

이세진은 자신과 전혀 맞지 않은 배세진과 부딪히는 걸 삼갔다.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단둘이 붙어 있는 경우도 없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상대와 딱 그만한 거리감. 서로를 위해, 팀을 위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두고 서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이세진이 살펴본 배세진은 예상과 달랐고 어떨 때는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닮았으며, 대부분 이해 못 할 행동을 했다. 저래서 신경 쓰기 싫었지. 상대의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저렇게 프로답지 못할까. 그러면서도 스태프나 관계자를 챙기는 능숙한 모습에서는 마땅하다고 이세진은 속으로 툴툴댔다. 물론 그 점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이중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이가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 배세진의 이상형인 다정한 사람이 누굴까? 이세진 입장에서도 다정해 보일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못내 그게 궁금했다.

다정, 그게 뭐라고. 

그래 사람이라고 했지. 그러면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다는 소리일까. 이세진은 이런데 편견이 없었다. 자신이라면 굳이 남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지만, 형님은 다를 수 있었다. 

배세진이 좋아하는 여자. 

배세진을 좋아하는 여자.

배세진이 좋아하는 남자.

배세진을 좋아하는 남자. 

이세진은 뭉게뭉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신이 생각한 배세진의 짝을 붙여주었다. 흠, 애매하네. 그때 마침 옆으로 배세진에게 더울까 물을 건네주는 여자 스태프를 보며, 저 사람이 배세진의 짝이었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스태프는 곧바로 배세진에게 물만 주고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세진 곁으로 류청우가 다가왔다. 야외 촬영이라 송골송골 땀이 맺힌 배세진에게 류청우는 웃으며 수건을 건넸다. 저건 다정할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배세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게 상상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한 애인과 그 옆에서 행복한 배세진. 

역시 그건 왠지 짜증 났다.

그럴 만한 하지. 지금은 어느 때인데 연애야. 커리어 갈 길이 구만리인데 연애라니. 이세진은 청학동 훈장님처럼 깐깐해졌다. 그래도 딱히 만나는 사람은 없어 보이니 다행이었다. 다행? 자신이 왜 다행이어야 하냐? 아니다. 다행이어야지. 연애하는 배세진이라니. 숨기지 못하고 암암리에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게 눈에 보였다. 퍽 잘도 숨기겠다. 이세진은 은연중에 배세진을 내려다봤다.

그런 이세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세진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류청우의 등을 퍽퍽 내려치고 있었다.

 

 

2.

유일하게 개인 스케줄이 둘만 없는 날이었다. 이세진은 거실에 상주하는 배세진을 슬쩍 보았다. 시끄러운 거실에서도 배세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저러면 집중이 되나? 아니나 다를까. 책에 고개를 묻고 있던 배세진이 고개를 팟 올렸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뭐야. 왜, 다시 시선을 피하는데? 배세진이 못 본 척 은근슬쩍 고개를 숙였다. 허어, 어쭈.

“형님~ 식사는 하셨어요?”

질색할 걸 알면서 물었다. 배세진은 여전히 눈을 피한 채로 조그마하게 '…어.'하고 대답했다. 입을 살짝 벌려 대답하는 모습이 묘하게 열이 뻗쳤다. 저렇게 요령 없는 사람이 무슨 연애야. 이세진은 슬슬 웃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 와중에 배세진도 더운지 볼 주변이 발갛게 열꽃이 올라왔다.

“더우시면 에어컨 틀어드릴까요?”

배세진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결 좋은 피부에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상대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더운 것 같은데 에어컨은 싫다니 이세진은 두 번 권유하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않게 방으로 향했다. 다정한 사람, 그런 거 되긴 그랬군. 이세진은 얼른 다른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오길 바랐다. 뒤에서 배세진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햄스터 바디필로우를 졸라매고 있는 줄도 모른 채.

 

 

3.

이세진의 다리 불안하게 떨렸다. 하나뿐인 외동딸 걱정하는 부모님처럼 늦은 시간 아직도 오지 않은 룸메이트는 무척 신경 쓰였다. 대체 뭘 하느라 이렇게 늦어. 사람 잠도 못 자게. 전이라면 배세진이 있든 말든 상관없이 잘만 잤을 이세진이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핑계를 댔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세진은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배세진만이 아니었다. 종방이라고 주요 배우들과 함께 회식을 꽤 즐겼는지 이세진의 룸메이트는 술이 과하게 취해 있었다. 드라마를 함께 촬영했던 남자배우 옆에 반쯤 안겨 온 걸 보면.

이세진은 초면인 배우에게 빼앗듯 배세진을 살포시 안았다. 술 취한 사람답게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배우를 칼 같이 자르며, 서글서글 웃으면 잘 가라고 배웅했다. 그리고 배세진을 꽉 안아 들며 방으로 가 그의 침대에 눕혔다. 배세진을 이부자리에 놓고서도 이세진의 얼굴을 도통 풀어질 생각을 안 했다. 설마 저 사람이 '그' 다정한 사람인가?

이세진은 어처구니없었다.

“그렇게 다정해요?”

충동적인 말이었다. 그 사람이 다정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게 자신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임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한 번 터진 주둥이는 멈출 생각을 못 했다. 어차피 기억 못 하겠지. 하면 또 어떻고. 이세진은 분노로 지나치게 뻔뻔해졌다.

“아니~ 다정한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시길래요. 그래서 전 그분이 다정하신가 봐 여쭤본 거죠~ 형님 취했으면 얼른 주무세요.”

그 말을 들은 배세진은 딱히 아무 말이 없었다. 이불 속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햄스터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꼼지락거리는 게 좀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보니 이글거리던 속이 차츰 가라앉았다. 뭐, 그래서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이세진은 나름의 평정을 되찾아갔다. 배세진이 엉뚱한 소리를 하기 전까지.

“…너.”

“예?”

“…너 다정하잖아.”

그 말을 끝으로 배세진의 몸은 쓰러졌다. 미친. 지금 주정뱅이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형님! 형님! 일어나보세요~!! 이세진은 웃으며 다급하게 배세진을 깨웠지만 잠에 헤어나오지 못했다. 고층이라 들리지 않은 여름 풀벌레 찌르르한 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이야.

멤버들을 깨울까 숨죽여 ‘형!’하고 부르는 처절한 이세진의 아우성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묻힐 뿐이었다.

 

 

4.

결국 술에 거나하게 취한 배세진이 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원인 모를 눈총을 받은 건 이세진만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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