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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별

 

 배세진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 호불호를 가리자면 차라리 싫은 쪽. 이유를 묻자면 자기 손목에 나 있는 고양이 발톱 자국을 들겠다. 어릴 때 아역 배우 생활을 하다가 촬영장 고양이를 쫓아가던 중 생긴 건데, 그때 엉엉 울다가 매니저 형한테 옮겨져 천막 아래서 소독약을 바르는 동안 다른 배우들이 얼마나 놀렸던지… 아니, 이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아무튼 배세진이 왜 갑자기 이렇게 쓸데없고 심도 깊은 고찰을 하고 있느냐면,


“야옹?”

“그렇게 됐어요, 형.”


 박문대 집에 갔더니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달달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없어하는 배세진 앞에서 박문대는 뻔뻔했다. 


“저 오늘부터 고양이 기릅니다.”

“아, 아니 왜?”

“귀엽더라고요.”

“…너 개파 아냐? 저번에도 강아지 영상 보고 있었잖아. 그, 그 리트리버…”

“아. 그랬던 것도 같은데 오늘은 고양이가 더 좋네요.”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의 연속에 배세진이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오늘? 오오늘? 그럼 내일은 개가 더 좋으니까 개 키울 거야? 뻐끔거리는 속으로도 그렇게 말했는데 그랬다가는 처음 사귄 친구도 잃을 것 같아 참았다. 주먹을 꽉 쥐고서 심호흡한 배세진이 조심스레 눈을 마주쳤다.


“그, 박문대 너라면 어련히 잘 고려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는 건….”

“걱정 마세요. 이미 사망 시 예산 상속한다는 유언장까지 다 써뒀거든요. 제가 죽을 때까지 모실 작정입니다.”

“…혹시 미쳤어?”


불안감에 짚어본 박문대의 이마는 아주 조금 따끈거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너 열나잖아. 가서 누워. 누워서, 약 먹어.”

“왜 이러세요.”


 박문대는 요즘 체력을 기른다며 벌크업을 하더니 밀려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질질 끌고 가 보려던 배세진이 되려 붙잡혀 소파에 주저앉혀졌다. 그새 쿠션 위로 자리를 옮겨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얜 고양이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졸지에 눈이 마주친 배세진이 의도찮게 눈싸움을 하는 동안 박문대는 핫초코를 타 오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 이 한여름에? 잠시만, 야! 배세진이 소리 지르는 건 듣는 체도 않았다.


“쟤가 왜 저러지….”


 그랬으니 답잖게 혼잣말을 한 것도 배세진에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밀색 털의 고양이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혹시 저 고양이가 아프기라도 한가? 병원에 데려가려고 주워 왔나? 고개를 숙여 샅샅이 훑어본 고양이에게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만져보려다가 깜짝 놀란 앞발에 손등을 얻어맞은 배세진이 입을 앙다물었다. 그새 밀색 고양이는 저 멀찍이 소파 끝으로 도망가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왜 아현이를 괴롭히고 그래요.”

“그,거 설마 쟤 이름이야?”

“네. 선아현이요.”


 입도 못 다무는 배세진 옆으로 뜨거운 김이 풀풀 올라왔다. 마침 박문대 집은 에어컨이 고장 났으므로 딱 좋은 선택이다. 쪄 죽기 딱 좋았다. 자기 몫의 사과 주스를 마신 박문대가 손뼉을 짝짝 치며 고양… 선아현을 불렀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고양이가 엉거주춤 일어나 박문대의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되게 사람 이름 같네…”

“얘가 그 이름이 좋다던데요.”

“뭐? 쟤가 말했어?”


 고양이는 이제 열정적으로 쓰다듬는 박문대의 손 아래서 흐물흐물 녹아가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머리통에 연신 뽀뽀하던 박문대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고양이가 말을 어떻게 합니까.”

“싸, 싸우자는 거야???”


 배세진이 소리를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새 몸을 푸르르 털고 일어난 고양이가 박문대의 허벅지 위로 올라선다. 야옹, 야옹 눈을 마주치더니 큰 이마에 제 작은 이마를 콩 맞댄다. 무슨 교감이라도 하는 건지. 한참이나 그러고 있더니 떨어져 나온 고양이가 박문대의 볼을 열심히 핥아줬다. 저거 되게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거나 말거나 박문대는 꽤 즐거워 보였고, 그건 아주 조금 올라간 입꼬리로 알 수 있었다. 평소 박문대는 그냥 죽거나 살거나 관심 없는 무표정 그 자체였단 말이다. 세진은 그제야 기분이 진심으로 이상해졌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홀로 생각했다.

 


 배세진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니 해가 지는 것도 빨라, 벌써 노을이 다 진 하늘이 까맣기 짝이 없었다. 별은 하나도 없구나. 박문대는 갑자기 맛이 가버렸고, 고양이는 도대체 갑자기 웬 고양이…

 멍하니 돌아가던 아파트 앞에서 눈을 마주쳤다. 고양이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가?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정말이었다. 털빛이 약간 남색에 가깝게 어두웠고, 덩치도 좀 크고. 배세진은 새삼스럽게 반나절 전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고양이는 보통이지만.. 따지자면 싫다. 어릴 때 팔뚝을 할퀴어서 빽빽 울고 작가 누나가 뛰어오고 병원 다녀오느라 촬영 늦춰져서 혼난 거 생각하면 아주 그냥 질색이다. 그렇지만, 저 고양이는 어딘가 배가 고파 보였고, 어쩐지 축축하게 젖은 모습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안쓰럽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는데 번뜩이는 금색 눈과 맞닿았다. 별안간 섬뜩한 느낌에 배세진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래서,

 이제 배세진은 고양이를 키운다. 언제부터냐면 조금 전부터. 고양이를 안고 집에 들어가서 밖에 나와 고양이용품을 사고 잘 삶은 닭가슴살을 먹인 것까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세진이 눈을 끔뻑이며 두툼한 고양이 등을 바라봤다. 저거 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근육인 것 같다. 손으로 만져본 등은 아주 단단하고 솔직히 좀 귀엽다.

 눈이 금색인 고양이가 야옹야옹 운다. 남색 털에 금색 눈? 외국 종인가? 


 배세진은 그간 고양이에 대한 큰 유감이 없었는데, 좋았던 쪽에 가깝다. 어릴 때 고양이에게 할큄 당한 후로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말하면 배세진의 취향이 다른 쪽인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더라. 고양이는 그 앙칼짐이 떠받들고 싶게 하는 힘이 있다. 예전엔 햄스터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래도 역시 고양이가, 고양이가… 

그랬었나?


 배세진은 조금 헷갈리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다. 눈이 금색인 고양이가 야옹야옹 운다. 어쩜 저렇게 고양이가 귀엽지? 몰래 쓰다듬어보는 털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낯선 감촉에 배세진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기억은 있는데 만져본 적은 잘 없던 것 같다. 제 앞발을 핥던 고양이가 세진의 무릎 위로 올라온다. 네모난 모양으로 발을 밀어 넣고 앉았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어쩐지 조금 더웠다. 미지근하게 열이 나는 것도 같다. 배세진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네 이름은…”


무릎에 웅크려 있던 남색 고양이가 야옹, 입을 벌린다. 귀엽게 운다.


“류청우. 응. 그래. 류청우.”


세진이 가만히 중얼거리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밝은 형광등 아래서 쏟아지는 빛이 부드럽게 반짝였다.

 

 새로 키우게 된 고양이는 세진의 집에 잘 적응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화분이 가끔 넘어져 있고 두루마리 휴지가 너덜너덜하게 다 풀려 있고 소파 하단이 벅벅 긁혀 있는 것 정도는 아주 양호했다. 이런 짓을 한 게 인간이었으면 뭐라고 소리를 쳤을 텐데 고양이니까 참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그래도 된다. 배세진은 이제야 박문대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그 뭐지, 고양이는 원래 모셔야 한다던가?

 박문대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뼉을 쳤다. 선아현은 요즘 문대 없이도 혼자 집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엔 분리 불안이라도 있었는지 야옹야옹 울어댔다고. 그 말을 하며 박문대는 얼마 전 휴학했다는 얘기도 했다. 최근 돈 들어올 일이 생겨 빠듯하진 않으니 당분간 같이 있어 주고 싶다고.


 배세진은 그 말을 들으며 턱을 괴었다. 작고 귀여운 남색 청우를 보면 그게 남 말 같진 않았던 탓이다. 나 없이 청우가 어떻게 혼자 살 수 있겠어. 유산이라도 … 유산, 내가 청우한테 남겨줄 돈이 있을까? 어떻게든 배우 복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처럼 살았다가는 가엾은 그의 고양이가 집에서 홀로 야옹야옹 울게 될 거다. 배세진은 멍한 얼굴로 제 무릎 위 류청우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 아래로 자꾸만 단단한 근육이 만져졌는데 굉장히 귀여웠다. 


“청우야.”
“애웅?”


 고개를 들면서 눈을 맞췄다. 금색 눈은 별 같기도 하고, 달 같기도 하고, 투명하게 빛이 들어 유리구슬도 같았다. 어쩜 눈이 이렇게 잘생겼지. 사실 이목구비 전체가 다 그렇다. 배세진은 가끔 당황스러웠고 자주 좋았다.


“너,는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잘생겼어?”


 웱우웅, 청우가 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뒷다리까지 야무지게 펴주고서는 꼬리 끝을 살랑거리며 다가온다. 따갑고 아픈 혀로 세진의 코를 삭삭 핥았다. 또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싶은 건지 들여다보는 눈이 꼭, 혼이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슬슬 코가 아팠던 배세진이 남색 고양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몸을 돌렸다. 제대로 누워 가슴팍에 올렸더니 늑골이 부러질 것 같긴 한데 아직 숨은 쉴 수 있었다. 언뜻 베란다 너머로 넘겨다 본 하늘엔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 주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끈덕진 상념은 자기 명치에서 식빵을 구우려 자리 잡는 류청우로 인해 깨졌다. 기분 좋은 목울음에 꼬리 끝까지 진동이 밀려왔다.


“…예쁘네.”


류청우는 꼭 밤 같은 면이 있었다. 까맣고, 어둡고, 반짝거려서,


“그래, 내가 너 먹여 살려야지….”


바라보고 있자니 곤히 잠이 왔다.

 

*

 

 초가을인데도 아직 날이 더워서인지 배세진은 자주 몽롱해졌고 졸음이 쏟아졌다. 간신히 나간 학교에서도 꾸벅꾸벅 졸다가 다급히 허벅지를 꼬집는 일이 잦아졌다. 눈앞에서는 교수님의 지시로 배가 고파 어슬렁거리다가 아무것도 찾지 못해 풀 죽어 드러눕는 호랑이 연기를 하는 학생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세가 꼭... 우리 청우 닮았네. 배세진은 집에 갈 때 간식을 사 가기로 결정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젊은 교수님이 손뼉을 짝짝 쳤다. 피로한 눈으로 연습실 구석의 가방을 주워든 세진이 사람들이 좀 빠질 때를 기다려서 신발을 신었다. 다들 재잘거리며 떠드는 모습이 영 시끄러웠다. 워낙 친목이 만연한 연기과라지만 세진은, 그냥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있었다. 선후배 간 인사가 필수인 것도 싫었고 틈만 나면 연습은 않고 술만 마시는 것도 싫었다. 신입생일 땐 그렇게나 입방아에 올랐던 배세진이었는데 휴학하고 온 뒤로는 그래도 잠잠하더라. 차라리 나았다.
느릿느릿 걷던 세진의 눈에 학회실 옆 게시판이 스쳤다. 프로젝트 포스터가 수도 없이 많이 붙어 있었다. 팀플, 동아리, 연극, 웹 드라마. 한때 배세진이 찍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서툴고, 작고, 그렇지만 열정적인. 그 안에 세진의 이름은 없었다.

배세진은 지금 … 잘 하고 있나. 세진은 자주 헷갈렸고, 조금은 우울했다.

 


 집에 들어오자 밝은 거실이 배세진을 맞았다. 내가 불을 켰던가? 무심코 생각하는 동안 부엌 구석에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란 옷을 입에 문 류청우가 식탁 아래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류청우, 남의 바지는 왜 물고 갔어?”


 트레이닝복을 잡아당기니 뺏기기 싫다는 듯 냉큼 앞발로 쥔다. 질질 끌려오는 모습이 우스워서 배세진이 피식 웃었다. 툭, 옷 틈으로 멸치 하나가 툭 떨어졌다. 무심코 그걸 주워보던 세진이 고개를 들고서야 눈앞 참사를 보고 경악했다. 싱크대 앞에 멸치 봉투가 한가득 쏟아져 있었다.


“야, 너, 너, 서랍 열고 멸치 꺼내먹었어?”


 심지어 고양이나 강아지들이 으래 그렇듯 죽어라고 물어뜯어 구멍이 난 게 아니라 그냥 지퍼가 열려 있었다. 배세진이 어제 사 온 멸치도 기억 못 할 리 없었으니 이건 분명 류청우가 머리를 쓴 게 맞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세진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남색 고양이는 눈치를 슥 보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저 자식, 사람 아냐? 

 

 그날 저녁엔 왕창 혼나고 간식도 못 받아먹은 청우가 부엌 앞에서 야옹야옹 울었는데 세진은 애써 들은 체도 안 했다. 청우는 그 날 처음으로 세진 곁이 아닌 캣타워 가장 위에서 잤다. 선잠이 들었다가 깬 배세진이 눈을 끔벅거리다가 한참을 뒤척이고, 거실에서는 득득 긁는 고양이 발톱 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쓸쓸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섯 번째 자다 깬 세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창밖은 어둑했고 별이 가득했다. 거실로 나간 배세진이 비장한 얼굴로 류청우를 불렀다. 


“류청우.”

“와웅?”

“앞으로 멸치 멋대로 꺼내 먹지 않기.”


 이 새벽에 일어나 한 일이 그거다. 류청우 앞발 잡고 화해하기. 자다 일어나 얼굴이 부어 있는 류청우가 금색 눈을 깜빡이며 야옹, 울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멸치를 그냥 먹으면 어떡해. 엄청 짜단 말야. 너, 너 물그릇도 아침에 보니 다 비워뒀잖아.”


 아까 세진은 네 번을 다시 잠들며 청우가 온종일 안아주는 꿈을 꿨다. 가끔 걔가 사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누구 고양이인진 몰라도 참 잘생겨서 흐뭇했다. 얘가 워낙 근육이 단단해서인지 몸도 좋고. 그런데 눈을 뜨니 곁엔 없더라. 여전히 캣타워에서 자는 청우는 딱 세진의 팔이 닿을 높이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아까 간식 안 줘서 미안. 화낸 것도, 미안.”


 웨웅, 류청우가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그 앞에 웅크린 세진이 작은 머리에 제 이마를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미지근한 털 결이 느껴졌다. 작은 머리의 맥박이 느껴질 것도 같았다. 잘 모르겠는데, 류청우는 이러는 거 좋아하는 것 같더라. 제 고양이가 좋아한다면 저도 앞으로 좋아해야 할 거다. 눈을 끔뻑거린 배세진이 고개를 들었다. 

 류청우가 밤하늘 구경을 좋아했으므로 베란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잠깐. …별이 보인다고?


 배세진이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급히 베란다로 가 난간을 붙잡았다. 하늘엔 분명 쏟아질 듯 많은 별이 하늘을 점령하고 있었다. 어릴 때 시골로 촬영을 갔을 때도 저렇게까지 많은 별은 본 적이 없었다. 분명 별이라 해놓고 점 열몇 개 정도나 콕콕 박혀 있던 게 다였단 말이다. 배우 아저씨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별이 많다고 했더니 저거 팔 할은 인공위성이라고 깔깔 놀리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세진이 눈을 비볐다. 몇 번이고 하늘을 봐도 결과물은 같았다. 별이, 많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흘러내릴 듯한 걸음걸이로 거실에 돌아온 배세진이 풀썩 쓰러지듯 러그에 드러누웠다. 멀리 오독오독 사료를 먹으러 갔던 청우가 그새 배세진의 등에 눌러앉았다. 무거워, 청우야…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든 세진이 하늘에 별, 하늘 별 개수, 요즘 밤하늘. 따위를 검색했다. 어두운 거실에서 환하게 반짝거리는 검색결과를 열심히 내려보다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하늘엔 아무리 봐도, 별은 없었다. 정말이다. 배세진이 알고 있는 하늘 그대로였다. 


 배세진은 벌떡 몸을 일으켜 뒤를 보려다… 실패했다. 묵직한 고양이가 등을 짓누르고 있던 탓이었다. 청우를 치울 순 없지, 러그에 머리를 처박은 배세진이 숨을 죽였다. 몸을 일으켰다. 먂, 흘러내린 청우가 놀라 착지하는 소리가 사부작거리며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좌해 앉은 배세진은 밤하늘을 한 번 슥 올려다봤다가, 제 앞 고양이를 봤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색 눈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낯설었다.


“…류청우.”


 고양이가 앞발을 핥으며 고개를 들었다. 자기 이름인 마냥 알아듣는 게, 아니, 난 왜 얘 이름을 그런 걸로 지었지? 나는 언제부터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지? 


얘는 언제부터 나와 살고 있었지?
 

베란다에서 흘러드는 달빛으로 거실은 은은한 빛이 드리워 있었다. 삭막한 어둠 아래 배세진이 삭막한 얼굴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너, 너 뭐야?”


 어두운 밤엔 조금만 움직여도 그림자가 크게 졌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청우가 가까이 와 배세진의 이마에 콩, 머리를 박았다.


“류청,우?”


 이마를 맞대려 조금 몸을 일으킨 고양이가 제 말랑한 앞발로 배세진의 코를, 볼을, 귓가를 짚었다. 고양이가 온통 제 앞을 가려놔 까맣거나 푸른색만 보였다. 류청우는, 이 작은 머리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아까 내가 했을 때도 가만히 있었지. 고양이들은 보통 닿는 걸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럼 이건 고양이 식 애정 표현인가? 얘가 날 사랑해서? …얘를 데려온 그 날, 내가 그때 미쳤던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내가 얘를 가엾다고 생각해서? 그도 아니면 꼭,

 …그때 처지가 날 닮았다고 생각해서? 불확실한 감정 속에 배세진이 입술을 꾹 앙다물었다. 한참이 지나 떨어져 나온 남색 고양이는 얌전히 배세진의 얼굴에 볼을 비볐다.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날 배세진은 간만에 깊게 잠들었다. 류청우도 삐졌던 게 맞는지 캣타워로 안 가고 세진의 팔 아래서 잠들었다. 아까와 같은 꿈을 꿨고, 한참이나 평화로워서, 세진은 눈을 뜨고도 꿈에서 깨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

 


 아주 가끔이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더욱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배세진이 가방끈을 꼭 쥐고 주변을 돌아봤다. 학교는 예전과 변함이 없고, 휴학한 사진과 박문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고양이랑 잘 놀았다. 나도 휴학하고 싶다. 그러면 온종일 집에서 청우랑 쉬어도 된다.
류청우는 어제도 멸치를 빼먹었고 배세진은 이제 자물쇠를 걸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찬장에 올려놨는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빼 먹는 거야? 고민하는 배세진에게 박문대는 무덤덤한 얼굴로 충고했다.


“비밀번호고 뭐고 안 될걸요. 그냥 아예 어딨는지도 모르게 하세요.”


 선아현은 순해서 몰래 빼먹진 않긴 하던데. 전화 너머에서 제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야옹거리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괜히 고양이 장난감 때문에 급히 연락했다가 염장만 당한 기분에 배세진이 입을 삐죽였다. 알았어. 고마워. 전화를 끊은 배세진이 지나치려던 마트에 다시 들어갔다. 허접한데 가격도 비싸지만 방울 달린 낚싯대를 샀다. 어제도 낚싯대를 끊어먹어서 별수 없다. 가끔 보면 배세진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 우리 고양이는 사람이었으면 헬스장에 다녔겠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령 드는 고양이를 떠올리던 배세진이 서둘러 아파트로 들어갔다. 남색 고양이를 처음 마주친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늘은 강의가 빨리 끝났으니까 아침에 가지 말라고 엉겨 붙던 청우가 기뻐할 거다. 하도 물려 아직도 시큰한 발목을 돌리던 세진이 몰래 웃었다.


“류청우, 나 왔…”


 배세진이 말을 멈췄다. 류청우가 화분을 깨트린 것도 식탁을 부숴 먹은 것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친 탓이다. 그러니까 내 집에, 처음 보는 남자가. 배세진은 잠시 버퍼링에 걸렸다.

 가족이 아니다. 얼마 없는 지인도 아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식탁 앞에 서 있었다. 그 위로 멸치 봉투가 보였다. 배세진은 침착하게, 아주 침착하게 들키기 전에 어떻게든 해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러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어둑한 남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 어쩐지 익숙한 인상으로,


“아, 들켰네.”


살풋 웃는 눈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오롯한 금색이었다. 동시에 우당탕, 배세진이 넘어졌다.


“도, 도둑이야!”


  배세진이 빼액 지르는 소리가 온 집을 쩌렁쩌렁 울렸다. 급히 문을 열려는데 그보단 남자가 더 빨랐다. 문고리를 붙잡은 손을 그보다 더 큰 손이 쥐었다. 꽉 붙잡혀 빠지지도 않았다. 이제 배세진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명치를, 명치를 찍을까? 나보다 팔뚝이 1.5배는 두꺼워 보이는데?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한없이 익숙한 냄새가 났다. 포슬거리는데 약간 고소한 체향. 덜덜 떨며 눈을 돌린 배세진과 얼굴이 과하게 가까이서 마주쳤다. 눈이 깜빡이고, 그 색은 꼭 거대한 보름달 같은 지나친 금색. 구슬처럼 투명한 눈 너머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이럴 리가 없는 데도 익숙한 뭔가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류, 류청우?”


 배세진은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지금 이럴 시간에 팔을 물어뜯고 도망가는 게 더 낫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무슨 기괴한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꿈에서라도 본 얼굴처럼. 가만히 마주치고 있던 눈이 다정하게 휘어졌다. 소름이 끼쳤다.


“아, 알아보는구나, 세진아.”

“…뭐라고?”

“못 알아보면 그대로 지워버릴 생각이었는데, 들킨 이상 어쩔 수 없네. 이젠 먹히지도 않을 테니까.”


 배세진이 멍청하게 눈을 끔뻑이는 동안 남자는 세진의 손을 문고리에서 조심스레 떼어냈다. 멍하니 주저앉은 배세진을 번쩍 들어 올려 현관을 지나 소파에 앉혔다. 빳빳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던 몸에 그제야 힘이 들어갔다. 방금 저 사람한테 한없이 가볍게 들렸다. 성인 남자인데. 내가. 배세진이 제 앞에 마주 앉는 남자를 보며 움찔거렸다.


“지금, 무슨… 설마, 진짜?”

“응. 네가 방금 말한 애 맞아.”


류청우. 제 가슴팍에 손을 얹은 남자가 웃었다. 


“네 사랑스러운 고양이.”

“무,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저기, 너…!”

“네가 방금 말해놓고 그러는 거야? 고양이 섭섭하게 그러는 거 아니다,”


 남자에게서 귀가 삐죽 튀어나오자 배세진이 히익 몸을 떨었다. 소파 뒤쪽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려는데 이미 끝에 닿아 더 갈 곳도 없었다. 이제 세진은 숫제 울기 직전이었다. 어떻게든 가짜라는 증거를 찾고 싶은데 뒤쪽에 살랑거리는 꼬리마저 어떻게 봐도 진짜였다. 이쯤 되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제발. 배세진이 간절히 빌거나 말거나 남자는 제 귀를 몇 번 팔락거리다가 다시 쑥 집어넣었다. 허망해진 세진이 다급히 다가가 남자의 머리통을 만지작거렸다.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떻게? 이게, 이게 가능해?”

“음.. 뭐 얘기가 길긴 한데.”


 난처하게 됐네. 배세진이 한참 제 머리를 뒤적이는 동안 류청우가 턱을 슬쩍 긁었다. 벌써 들킬 줄이야. 어떻게 납득시키지?


“이유를 다 말해줄 순 없겠다. 우리도 우리 종족 비밀이 있는 거라. 크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첫째. 류청우가 제 굵은 손가락을 접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평범한 고양이는 아냐. 정확히는 이 별에 살던 건 아니지. 우리별은 멸망했거든.”

“며, 멸망?”


 뒤로 물러선 배세진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류청우의 머리를 보며 흠칫했다. 조심스레 다시 다가가 정돈해주는 모습을 올려다보던 류청우가 제 눈앞의 배를 쿡 찔렀다. 깜짝 놀라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응. 두 번째는… 이것부터 말해주지 않으면 계속 의심받겠지? 네가 날 충동적으로 데려온 건 내가 한 게 맞아. 어떻게 한 건지는 비밀.”

“그, 막 이상한 기분 되는 거? 막 모셔야 할 것 같고?”

“그랬어? 그럼 멸치 좀 더 주지.”


 모시는 것 치곤 너무 적게 주더라. 서운했어. 주춤주춤 물러난 세진이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3초 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빽 소리 질렀다. 며, 멸치 꺼내먹은 것도 너였어? 아니, 고양이가 아니라 너, 사람…! 배신감에 몸을 떨거나 말거나 류청우가 가만히 웃었다. 이제 배세진은 화나다 못해 혼란스러워 보였다. 자꾸만 손을 가만두질 못했다. 


“그, 그게 네가 한 거라고? 기억도 막, 어떻게,”

“응. 그런데 너는 못 하는 것 같더라? 신기했어. 여기 생명체들은 다른 종과 대화를 어떻게 하나 몰라.”

“…그럼, 너희는 왜 알려지지 않은 거야? 너희가 침투한 거야? 별을 떠나, 지구로 와서?”

“뭐, 그런 거려나.”

“그건, 사람들을 속이는 짓이잖아.”


 배세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요란하게 떠드는 소리가 아파트 7층 아래서부터 올라왔다. 그새 튀어나온 류청우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남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까맣고, 종종 푸른, 그렇게 섞인 무언가로. 


“그래선 안 돼. …나라에 신고해. 정식으로 인간 사회에 편입해. 그,런 건 잘못된 거야.”


가만히 마주 보던 류청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그건 좀 가벼운 접근인데. 세진아. 그러면 우리는 죽어. 너희 인간들은 모르겠지만.”

“...뭐?”

“너흰 우릴 들어본 적 없지? 그럴 거야. 인간들은 너무 많아서… 하루에 죽어 나가는 고양이는커녕 동족들의 수도 잘 몰라. 그러니 어디서 어떤 무서운 실험이 자행되고 있는지도 알 리가 없지. 자기 하나 간수하기 바쁘니까.

 우리는 소수여서 그런 생활방식은 좀 낯설긴 하더라, 우린 다들 한 가족처럼 살았거든. 하하. 류청우가 웃는 시늉을 했다. 다만 눈은 웃고 있질 않았다. 뒤쪽으로 탁탁거리는 꼬리에서 은근히 털이 날렸다.


“그러니 어쩌겠어, 인간의 삶에 스며들어야지. 원래부터 사랑하던 친구처럼, 평생 함께할 가족처럼. 내 둥지를 찾아서.”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상대한테 동의 받지 않은 일이잖아. 왜 네 자신의 독립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다른 가정에 침입하는 거야? 네, 네 동족은 다들 그래?”


류청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물들은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며 살지? 그렇지만 그걸 불평등하다고 따지진 않잖아. 우리도 그래. 지구에서 뻐꾸기가 탁란하듯 살 방법을 찾는 거야. 음, 그렇지만 그쪽보다 훨씬 평화롭긴 하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 추가된다고 인간 가정이 망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니까.”
 

“……”

“그렇게 안 살아도 된다면 그러고 싶지. 실제로 안 그래도 됐어. 어머니 별에서는….”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배세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바닥 러그에 가만히 앉아 있던 류청우가 몸을 일으켰다. 배세진 옆 소파에 주저앉아 등을 기댔다. 등이 아팠던 걸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었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배세진은 곁을 돌아보지 않았다. 마주친 눈은 사실 좀 울적하게 보여서, 그래서.


“대신 우리는 그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다. 아까 말했지. 여러 가지 힘을 통해서.”

“…왜 너희 스스로가 직접 행복해지진 못하는 건데?”

“음, 여러 이유가 있지. 인간 형태는 하루 3시간 밖에 유지 못 한다거나, 밖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우리 기척을 별로 안 좋아한다거나, 아니면… 이렇게 기생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법 외엔 내 편을 찾기 힘들다거나. 밖에서 수상한 낌새라도 보였다간 곧장 죽을 테니. 


배세진이 꾹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정보가 과도하게 많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류청우는, 외계에서 왔고. 멸망한 별의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배세진이 고민하거나 말거나 말은 곧은 템포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네가 짐작할 정도의 방식은 우리도 시도해봤어. 수도 없이 많이. 결과는, 아까 말했지? 많이들 죽었다고.”


 류청우가 몸을 돌렸다. 가까이 다가왔다. 흠칫 놀란 세진이 몸을 뒤로 빼려는데, 허리를 붙잡혔다. 퉁, 이마를 맞대고, 미지근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놀라 입을 다물지도 못하는 와중 류청우가 속삭였다.


“연예계에 복귀하고 싶지, 세진아?”

“…그, 그걸 어떻게,”

“널 도와줄 수 있어. 그게 아니라면 그냥 평화롭게 사는 것도 좋겠다. 뭐 신변에 위험 생길 일 없이 돈 적당히 쥐고 말야. 네가 걱정하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무슨 수로?”

“이제부터 알아가 볼까? 네가 날 받아주기로 한다면.”


 류청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동시에 펑, 남색 고양이로 돌아왔다. 미야옹, 야옹, 아까보다 한없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울었다.


“하, 하루 3시간….”


 조심스레 중얼거린 배세진이 소파 구석에서 몸을 돌렸다. 정말인 건가? 하루 3시간만 인간형이 될 수 있다는 거. 그 변신 조건엔 인간형만 포함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생물도? 애초에 고양이의 모습이 류청우의 본체인가? 외계에도 고양이가 있다는 뜻인가? 고양이 별? 옆에선 류청우가 열심히 울어대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구강구조가 달라서 언어를 학습해도 말할 순 없는 건가. 


……지금의 류청우라면, 쫓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배세진의 삶은 지금 들은 모든 걸 모르는 체 하고 다시 예전대로 돌아갈 수 있다. 류청우가 인간형일 땐 한없이 거대하고 강하니 아마 배세진이 무력으로 승리하는 건 무리겠지만, 지금이라면… 아니, 그런 생각을 한다고.

제가 다른 인간들과 다를 게 뭐지?


 배세진이 미지근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푹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고양이가 자꾸 울어대며 감상을 방해했다.


 이렇게나 끔찍한 발상을 떠올렸다는 점 자체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두겁을 쓰고 그럴 수가 있는지. 류청우는, 본인의 말대로 하면 한없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약자다. 사랑하는 별이 멸망해 전혀 모르는 곳에 쫓겨난 이방인. 아는 이 없는 땅에서 홀로 살아야만 하는 비참함.
아니, 류청우는 정말 힘없는 이가 맞는가? 강도와 한집에 있는 것과 사랑하는 고양이와 한집에 있는 것, 배세진은 어느 방식으로 제 위치를 상정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어느 쪽도 어렵기 짝이 없었다.


“휴…”


 푹 한숨을 쉰 배세진이 제 앞의 청우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 100% 고양이인 척도 포기한 건지 앞발을 들고 뭐라 뭐라 야옹거린다. 까만 발 속 분홍색 육구가 심란한 마음을 방해할 정도로 귀여웠다. 그 앞발 끝에 손가락을 툭, 갖다대본 배세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류청우, 너. 지금까지 고생 많았겠네…….”


 두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배세진은 낯선 별에서 살아야만 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우주로 나갈 수도 없겠지만, 사실 류청우가 이쪽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청우가 지금까지 해준 말들이 모조리 거짓이라 할지라도 말끝의 외로움만큼은 헛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본 베란다 너머에는 다시금 별이 없었다. 새까만 하늘, 그 자체였다. 불편한 감정에 잠겨 있던 배세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아까까지만 해도 낮 아니었나? 내가 기절했다가 깨어났었나?


“애웅?”

“너, 네가 한 거야?”


 배세진의 손가락에 턱을 비비던 남색 고양이 류청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표정이 어이가 없었다. 밤이 된 게 더 놀라운지, 아니면 내가 보던 별 가득한 하늘이 원래대로 돌아온 게 더 놀라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배세진이 그동안 보던 하늘도, 주변도, 시간대도 실제한 게 맞는지 복잡했다.

 내가 지금까지 혼란스러웠어서 그런 걸까? 류청우가 내 생각을 뒤엎고 헝클어놓은 증거가 그 괴상한 별 가득 하늘이었던 건가. 하늘은 아무것도 없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고 배세진은 풀썩 머리를 박고 엎어졌다. 별 가득하던 하늘. 류청우가 보여준 헛것 속 별무리엔 어쩌면, 류청우가 돌아가고 싶은 별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새로운 별의 이방인, 배세진은 문득 상상 그 자체만으로 외로워졌다. 


“……그래, 나랑 살던가.”


눈을 꾹 감은 세진 옆에서 남색 고양이가 기쁘게 울었다. 야옹.

 

 

 옆으로 누워 있던 배세진이 눈을 뜬 건 잠시 후였다. 옆에서 몸을 색색 말고 류청우가 자는 걸 보니 깜빡 졸았나 보다. 그렇다 치기엔 좀 오래 졸긴 했다. 해가 뜰 정도면 그냥 푹 잔 거지 아마. 
오늘은 류청우의 꿈을 꾸지 않았다. 그냥 언젠가 어릴 때 꾸던 것처럼 형체 없고 오묘한 거. 눈을 깜빡이던 배세진이 몸을 일으켰다. 무심결에 양치하고 옷을 입었다. 학교… 가야지. 내가 키우던 고양이가 외계생물이거나 말거나 출석은 중요하고 류청우는 학점까지 구원해주진 못한다. 느릿느릿 가방을 챙기던 배세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이 토요일인 걸 이제야 깨달아서는 아니었다.


“바, 박문대는?”


 황망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거실에서 자던 류청우가 깨어났는지 야옹 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달려 나가는데 이쪽으로 뛰어오던 남색 고양이와 마주쳤다. 먀앆! 깜짝 놀란 소리를 신경 써줄 만큼 배세진이 제정신이진 않았다. 서, 설마 그 미친 짓도 그거 아냐? 홀린 거? 그렇다면 박문대는 알고 있나? 다급히 신발을 구겨 신고 뛰쳐나가는데 전화를 해야겠다는 판단조차 서지 못했다. 그나마 박문대의 집이 근처라는 게 망정이지. 한참이나 달려 숨을 헐떡거리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한 문 앞에 선 배세진이 침을 꾹 삼키고 비장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박문대! 안에 있어?”


 이윽고 문이 열렸다. 배세진의 표정이 한결 멍청해졌다. 밀색 머리에, 색소 옅은 눈의 남성이 나란히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헉, 아, 아, 안녕하세요…”

“……누구?”

“선아현이요.”


 뒤에서 불쑥 박문대가 튀어나왔다. 배세진은 혼절할 것 같은 얼굴로 뒷목을 잡았다. 깜짝 놀란 선아현이 문을 벌컥 열었다.

 

*

 


“제가 이겼습니다.”

 박문대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선아현한테요. 제 허벅지에 머리를 기댄 밀색 고양이가 행복하게 목울음을 우는데도 그랬다. 누가 봐도 강렬하게 패배한 인간주제에 참으로 양심 없는 발언이었다. 


 아까 배세진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아마 선아현, 이라던 것 같은 남자는 배세진을 보며 무척이나 허둥거리더니 펑, 고양이로 돌아가 버렸다. 익숙하다는 듯 옷을 주워다 개켜놓은 박문대가 길쭉하게 늘어난 고양이를 들어 올리며 소개했었다. 아현이라고. 선아현.

이제 배세진은 조금 어이가 없었고 황망해졌다. 내가, 내가 한 고민은 다 헛것이었어?? 나만 그렇게 진지했던 거야?


“너, 넌 언제부터 알았어? …어떻게 그렇게 태연해? 무려 애들이 진짜 고, 고양이가 아니라는데!”

“어디까지 얘길 들으셨을진 모르겠는데, 형도 받아들이기로 한 거 맞죠?”

“응? 으, 응, 그렇긴 한데.. 그건 또 어떻게,”

“그게 아니었으면 경찰이랑 왔을 테니까요.”


박문대가 얼음 동동 띄운 사과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엔 멀쩡하게 배세진 앞에도 사과 주스가 놓여 있었다. 저번에 핫초코 준 것도 눈 돌아서 그런 거 아냐? 원래 이상한 애였나? 조금 그렇긴 한데… 배세진이 고민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박문대는 제 곁 고양이 턱을 긁어주며 말했다.


“흠. 뭐, 서로에게 나쁠 거 없잖습니까. 상부상조하며 사는 거죠. 룸메이트 하나 생긴 거랑 다를 바가 있나요.”

“그걸, 그걸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믿어? 얘가 날 해치기라도 하면…”

“아, 만난 애가 이것까진 얘기 안 해주셨나 봐요. 걔네 못 해치는데.”

“뭐라고?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배세진의 눈이 사나워지기도 전에 허공에 고양이 털이 풀풀 날렸다. 에취, 답잖게 얇은 소리로 기침을 하거나 말거나 박문대는 담담해 보였다. 세진이 급히 사과 주스를 들이마셨다.


“걔네의 정신 조작 조건이 그거예요. 사랑하는 거. 결코 서로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있을 때.”


 그 말을 듣자마자 세진은 소파에서 미끄러졌다. 벌떡 일어나는 입가엔 방금 뱉은 주스가 흥건했다. 박문대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더럽게 뭐 하세요?”

“무, 무무슨, 야, 내가 걔를? 아니, 그 녀석은 고양이고, 나는, 나는, 아니 걔는, 뭐 잘생기긴 했던데 그렇지만 내가 키,우던 고양이고…!!”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척, 박문대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 졸기 시작한 선아현이 색색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랑이란 감정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불분명하니까. 아가페적이든 에로스적이든 구분하진 않거든요. 단순히 적의만 아니면 대충 해결되는 모양이더라고요.”


 동정이든 호감이든, 조건이 좀 애매하긴 하던데. 박문대가 어깨를 으쓱였다. 배세진이 자리에 앉았다. 박문대가 손을 뻗어 물티슈를 집어다 내밀었다. 선아현이 깨지 않도록 하느라 모양새는 좀 웃기긴 했다. 쟤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저렇게나 진심이구나. 배신감 같은 건, 안 드나. 배세진이 물티슈로 가슴팍을 닦으며 생각했다. 잘 안 지워졌다. 


“토요일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했네. 고양이는 두고 오셨어요?”

“응, 뭐, 아니, 오늘 토요일이었구나,”


 너 모를까봐 놀라서 뛰쳐나왔다는 말은 차마 못 한 배세진이 입 속으로 말을 삼켰다. 그새 깨어난 선아현이 눈을 끔뻑였다. 


“지금쯤 기다리고 있겠는데요.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글쎄, 나 없어도 괜찮아 보이긴 하던데. 잘 놀고…”


 무감한 눈으로 보던 박문대가 제 고양이를 가리켰다. 온 몸으로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동족끼리는 애들이 감정을 가끔 좀, 공유를 하더라고요. 멀리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외롭나봅니다.”
 

 배세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과주스를 끝까지 다 마신 박문대가 그를 배웅했다.

 

 

 집에 들어서자 익숙한 고양이가 투다닥 달려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웨옹, 야옹, 우웅, 울어대는 울음이 쉬질 않았다. 주저앉은 배세진이 류청우를 들어올렸다. 남색 몸이 길다랗게 늘어났다. 쭈욱,


“…나 보고 싶었어?”


내가 왜 보고 싶어. 내가 뭘 해줬다고. 입이 썼다. 

 


*

 

 류청우는 그 뒤로도 전과 다를 바가 별로 없었다. 멸치를 자주 훔쳐 먹었고,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좋아했으며, 낚싯대 중에서는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비 모양, 캣타워에서는  부드러운 쿠션 자리를 가장 선호했다. 그 무엇도 배세진이 알던 것과 다른 게 없었다. 차이점 하나 생기긴 했다. 이젠 배세진이 보고 있어도 당당하게 멸치를 빼 먹기 시작해서 등을 찰싹찰싹 맞는 거.


 배세진의 삶도 그 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긴 했다. 여전히 학교에 나갔으며 가끔 수업을 들었다. 공연 제작이 있는 건 가급적 안 듣고 싶었는데 방법은 없었다. 후, 가만히 한숨을 쉰 세진이 희멀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 위로 묵직하게 몸을 만 남색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처음엔 근육질 남자가 올라탄 것 같아 내려놓은 것도 한두 번이었는데 자꾸 올라오더라. 네 번째가 되고 나서는 이제 포기했다. 그냥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상상만 종종 휘저어 쳐내던 배세진이 자길 내려다보는 청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놀랄만한 사실을 알고 나서도 류청우의 눈은 여전히 반짝였고, 그건 인간일 때도 다름이 없었다.


 초가을 산들바람이 느긋하게 불어오고 높게 뜬 하늘이 푸를 무렵 갑자기 몸 위 고양이가 벌떡 일어났다. 작은 발에 무게가 집중당한 배세진이 쿨럭 기침하거나 말거나 깡총 뛰어내린 류청우가 천천히 걸어 배세진의 침실 방문 앞에 섰다. 문을 득득 긁는 시늉을 하더니 야옹, 야옹 운다. 몸을 일으킨 배세진이 류청우 뒤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문 열어달라고?”


 청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세진은 얘를 데리고 방송에 나가면 엄청 뜨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가 곧장 포기했다. 문을 열어줬더니 총총 걸어 들어간다. 알고 보니 청우는 옷을 혼자서도 잘 입었다. 고양이일 땐 옷을 입거나 말거나 별 상관도 없는데, 인간일 땐 왜 맨 몸으로 안 돌아다녔냐고 하니 인간은 털이 없어서 부끄럽다더라. 무슨 차이지?
이제 배세진은 외계 별 문화에 대해 더 파악하길 포기했다. 그렇지만 자기 같아도 고양이가 되었는데 털 위에 바지를 또 입고 싶지 않긴 했다.


 배세진이 멍 때리는 동안 옷을 입고 나온 류청우가 소파에 앉았다. 알고 보니 예전에 류청우가 물고 다니던 것도 다 유일하게 자기 사이즈에 맞는 옷이었다. 배세진 본인에겐 사이즈가 너무 커서 신경도 안 쓰고 있던 옷이었는데 다시 보니 류청우가 입고 다니느라 늘어져 해지기 직전이더라. 결국 새로 사 줬다. 그새 어깨가 맞닿자 흠칫 몸을 떠는 게 옆 사람에게도 느껴졌다. 흰 티셔츠에 묻은 남색 털을 정리하던 류청우가 고개를 돌렸다. 배세진과 눈을 마주쳤다. 느릿하게 깜빡거렸다가, 다시 깜빡.


“왜, 왜? 할 말 있어? …멸치는 안 돼.”


 너 아까 많이 먹었어! 주먹을 꽉 쥔 배세진이 빼액 소리쳤다. 용기 있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던 류청우가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했다. 긴 속눈썹을 바라보다가, 곧은 코에 코를 맞댔다. 배세진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대로 시선이 마주쳤다. 배세진이 몸을 뒤로 미루려는데도 그만큼 따라갔다. 

 눈이 자꾸만 마주치고, 문득 입술에 축축한 게 느껴졌다. 조금 뭉근하고, 뜨겁고. 기겁한 배세진이 몸을 뒤로 물리려는데 소파에 막혀 있었다. 가만히 입술을 핥던 류청우가 볼까지 뽀뽀를 옮겼다. 배세진이 어깨를 때리거나 말거나 잘 느껴지지도 않는 것 같았다. 늦장부리며 몸을 물린 류청우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배세진을 바라봤다. 이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미, 미쳤어 류청우???”

“음? 갑자기 왜 그래? 자주 하던 거잖아.”

“그건 고양이일 때지!”


 배세진이 정수리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이제 류청우는 퍽 섭섭한 표정이었다. 삐죽 앙다문 입술이 그래보였다.


“난 언제나 네 고양이인 걸. 세진아, 안 해줄 거야?”

“으… 사, 사람일 때는 안 돼.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 난 잘 모르겠어.”

“아무,튼 저리 가.”


 결국 배세진은 세 뼘 이상을 떨어지고 나서야 소파에 풀썩 누웠다. 자꾸만 기웃거리던 류청우는 이번엔 세진의 희멀건 팔뚝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아래서 움찔거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근육이 너무 적어. 이게 뭐니 세진아. 새끼 고양이들도 이 정도는 아냐. 너는 운동이 좀 필요해.”

“새, 새끼고양이라니, 무슨, 그 정도는 아니거든!”


 눕던 건 언제고 벌떡 일어난 세진이 여전히 빨간 귀로 바락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청우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진지해졌다.


“앞으로 타워 오르기라도 좀 하는 건 어때? 아니면 낚싯대 사냥하기 같은 거. 그거 좀 재밌던데. 진짜 사냥은 아니어도 몸 풀기로 할 만 하더라.”

 배세진은 청우가 흔드는 장난감을 잡으러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본인을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인권이 침해당하는 기분이다.


“지금 해줄까? 방울 달린 거? 아니면 털?”

“돼, 됐어! 필요 없어!”


 후다닥 몸을 돌리는 배세진을 구경하던 류청우가 웃었다. 아까 놀라던 건 언제고 그새 다 잊은 모양이었다. 때때로 이마를 맞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배세진은 유독 감정 표현이 노골적이라서 조금은 재밌고, 웃기기도 하고. 류청우가 그새 주워들었던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꼼지락거리는 소리만 좀 들리고 다시 한 번 침묵이 이어졌다. 익숙하고도 고요했다. 배세진은 아까 난리를 치느라 떨어트린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 옆에서 청우가 기웃거린다. 그러고 보니 류청우는 핸드폰이 없지. 핸드폰 중독 중기 배세진에게는 상상도 못할 삶이었다. 핸드폰을 만들어 줘야 하나? 적응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세진이 저를 보던 청우와 눈이 마주쳤다. 또, 또 세진을 보고 있었다. 온종일 시간만 나면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사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고.

우물쭈물 시선을 피하며 입을 앙다물던 세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류청우, 넌 심심하지 않아?”

“응?”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계속 나만 쳐다보잖아. 안 지루하냐고. 너는 잘 나가지도 못한다 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낮이거나 밤이거나 또렷하게 빛나는 눈 속에 세진의 얼굴이 비쳤다.


“난 지금도 즐거운데. 세진이 너와 함께 있어서.”

“무, 무슨!”


 쉽게도 달아오르는 볼이 또 금방 익었다. 마주보던 눈이 다정하게 웃고, 이윽고 펑, 고양이로 변해버린다. 또 벌써 시간이 된 건가. 아까 돌아다니기라도 한 건지 오늘은 유독 짧았다. 옷가지 안에서 류청우를 해쳐들어 꺼낸 배세진이 제 무릎에 앉혔다. 부드럽게 털을 빗겨주면서, 여전히 자길 올려다보는 눈을 봤다. 여전히 금빛으로, 구슬처럼 빛나는,

 

아까 한 말, 거짓말이구나. 


 류청우가 자주 하듯 이마를 맞대본 건 아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넌 여전히 외로운 거야? 밖에 나가고 싶어?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거야?

 그렇지만 배세진은 아무 것도 묻지 못하고 작은 남색 고양이는 만족스럽게 골골 목울음을 울었다. 장갑을 낀 듯 하얀 류청우의 앞발을 잡아당겨 쪽, 입을 맞댔다. 얘는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자고 말했지. 그건 정말일까. 내가 이 특이한 고양이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언젠가 류청우가 날 두고 가버리진 않을까. 제 별을 찾아, 사랑을 찾아. 점점이 내려앉는 생각 너머로 다시금 해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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